목록분류 전체보기 (547)
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지옥도 그날은 한칼에 베어진 하늘이었고 바다였다 너와 나는 끝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각자는 고유한 색깔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쪽에는 나의 하늘이 저쪽에는 너의 바다가 있었다 오직 하늘과 바다 그 갈라진 사이만이 시야에 가득했고 그 사이를 볼 수 없고 ..
공주탑에 기대어 - 뱀을 기다리며 아주 아주 오랜 전 이야기랍니다 그래요 이건 신기한 이야기랍니다 뇌우雷雨가 그친 어느 맑은 봄날 아침 그대는 폭우가 데려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려 피리를 불었을 뿐이지만 땅이 부르면 하늘이 답하듯 오래 전부터 합을 맞춰온 해금의 ..
천사의 나팔 청개구리 나발 불고 소낙비 그친 저녁은 여름 치정과 복수에 이어 흙냄새를 전염시키는 세간이여 그대에게 용서를 구할 시간이다 사도使徒가 이끌고 당도하는 천국의 때깔과 향기 마감 기사와 저녁식사를 함께 해결하는 오늘 내 오랜 절망도 결국 사랑으로 끝나리란* 속삭..
낙화 어둠 너머 개가 짖고 이제 너는 세상 모든 두려운 이 얼굴을 안고 떨어진다 허기를 안고 떨어진다 밖으로 난 창문을 닦는 건 나인데 아무래도 나를 바꾼 건 너 같고 눈 감으면 꽹과리소리 들린다 너의 혀는 대지 깊숙이 젖어있고 너는 생을 불 밝히고 왔으나 이제 짙푸른 지옥을 맛보..
김유정, 내가 사는 동네의 선배작가시다. 그런 연고로 2002년 문학촌 개관 전시기획를 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작품을 연구하고 어떻게 김유정을 소개할까. 고민했었다. 김유정은 1930년대 당시 유민들을 그려냈다. 수탈때문에 농토에서 내몰린 농민들이 도시로 흘러드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이방인 똑바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마흔 살 나는 전형 엉뚱한 곳에 와 있었다 엉뚱한 곳에서 이방인의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통역해주지 않았다 왈가왈부 나는 거기서 한참 멀리 걸어왔는데, 너는 어제의 나와 이야기를 하는구나, 나는 거기서도 한참 더 ..
두 번 쓸쓸한 전화 시 안 써도 좋으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카의 첫돌 알리는 동생의 전화다 내 우울이, 내 칩거가, 내 불면이 어찌 시 때문이겠는가 자꾸만 뽀족뽀족해지는 나를 어쩔 수 없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하면서도 자꾸만 주저앉는 나를 어쩔 수 없는데 미혼, 실업, 버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고 까마귀도 와서 울었다(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의미) 가을 가을 소리로 가득한 세상이 오는 구나 뒷산에는 쓰르라미가 울고 여치가 울고 이름도 모르는 너는 울고 화장실에는 뀌뚜라미가 울고 매미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아침에 휘파람새는 더 이상 오..
우리말 표현에서 정말 많이 등장하는 쓸데없는 들러리, '적', '의', '것', '들'을 없애면 문장이 깔끔해진다. 사회적 현상, 문제의 해결 → 사회 현상, 문제 해결 '것'은 의미를 더하지 않은 채로 문장을 길고 모호하게 만든다. 복수 접미사 '들'은 영어 표현의 번역체에서 왔다. 우리 말은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