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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깔나무가 물들면 가을 끝자락이다. 가장 늦게 물드는 나무기 때문이다. 겨울까지 이깔나무는 물들다 비 내리듯 잎을 떨군다. 그 아래 서면 떨어지는 소리가 가랑비 내리는 거 같다. 이깔나무는 잎갈나무 또 낙엽송으로도 불린다. 현재 남쪽 산에 식재된 이깔나무는 일본 낙엽송이다. 우리 고유의 이깔나무는 백두산 아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백두산에서 캠핑을 한 호주의 캠퍼가 전한다. 우리 산에 식재된 낙엽송 군락이 있는 자리는 1968년 이전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공비가 있던 시절 그들을 버덩으로 끌어내려 독가촌을 만들었다. 그들의 빈 자리에 식재가 된 게 낙엽송이다. 그러니까 남쪽 산에 군락을 이루는 낙엽송이 자라는 곳은 화전민의 흔적일 수 있다. 평창, 인제와 홍천의 내면 쪽에 낙엽송이 많은 건 3차..
11월 / 한승태 어깨 기운 나무 전신주 가물거리다 흐릿하고 고요하다 깊어진다 햇살은 노드리듯 날비처럼 나리다 골짜기마다 고이고 고여서 날개를 접은 까마귀 하나 눈이 멀었다 이승의 반대쪽으로 기울어진 그림자 볕바른 도사리나 마른 삭정이처럼 오래 마르고 있다 이깔나무 해 바른..
무엇을 태울 것인가? 이창동의 (버닝> 한승태(시인/학예연구사) 정말 오랜 만에 극장에 가 영화를 보았다. 그것도 아내와 큰 딸을 대동하고 청불영화를 같이 보았다. 믿을 만한 지인의 소개였기에 큰 맘으로 갔던 것이다. 언론에서 혹은 페북에서 얘기하는 대로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그..
시인이여, 너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한승태 최근 여성 시인, 작가들의 고백 및 작품 발표로 문학계가 낯부끄러운 이전투구의 장 같다. 그러나 진즉에 터졌어야 할 일들이다. 우리가 사는 당대는 바뀌고 있다. 변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도 만만치 않다. 첨단을 달린다는 글 쓰는 집단에도 예외가 아니다. 나부터도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의 글도 여자에게 마음을 얻기 위한 제스처였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세계관이 있었겠는가. 그런 거 없었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에게도 참 많은 누를 끼치고도 독설을 퍼붓고, 어찌어찌해보려고 했다. 인정한다. 마치 그것이 문학하는 자의 특권인양,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그런 선배들을 부러워했으면서도 욕했다. 그러면서 선배가 되어서는 나도 그랬다..
지옥도 그날은 한칼에 베어진 하늘이었고 바다였다 너와 나는 끝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각자는 고유한 색깔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쪽에는 나의 하늘이 저쪽에는 너의 바다가 있었다 오직 하늘과 바다 그 갈라진 사이만이 시야에 가득했고 그 사이를 볼 수 없고 ..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어느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였다. 주인아주머니와 우리가 말렸지만 한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이 절까지 모두 불렀다. 포장마차에서 고성방가가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한은 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내린천에서 태어났다고 ..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승태 시인의 시를 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결락’이다. 자연과 문명, 과거와 현재,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결락을 메우기 위해 그의 시는 때로는 폭포처럼 내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전면적인 백기투항을 하기도 한다. “어둡고 깊..
짝사랑 풀벌레가 운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황금빛 나뭇잎이 노래한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거부하면서 너는 탄생한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 농부의 딸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였듯 나도 그대를 지키는 기사가 되어야 할까보다 기사도를 위해 그대는 공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