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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깔나무가 물들면 가을 끝자락이다. 가장 늦게 물드는 나무기 때문이다. 겨울까지 이깔나무는 물들다 비 내리듯 잎을 떨군다. 그 아래 서면 떨어지는 소리가 가랑비 내리는 거 같다. 이깔나무는 잎갈나무 또 낙엽송으로도 불린다. 현재 남쪽 산에 식재된 이깔나무는 일본 낙엽송이다. 우리 고유의 이깔나무는 백두산 아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백두산에서 캠핑을 한 호주의 캠퍼가 전한다. 우리 산에 식재된 낙엽송 군락이 있는 자리는 1968년 이전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공비가 있던 시절 그들을 버덩으로 끌어내려 독가촌을 만들었다. 그들의 빈 자리에 식재가 된 게 낙엽송이다. 그러니까 남쪽 산에 군락을 이루는 낙엽송이 자라는 곳은 화전민의 흔적일 수 있다. 평창, 인제와 홍천의 내면 쪽에 낙엽송이 많은 건 3차..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파아란 하늘이 보이곤 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그래서 난 그만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시시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박세현 시인, 그의 시집 <아무것도 아닌 남자>는 그의 삶과 시 사이에 긴장을 만든다. 보통은 시 내부의 행과 행이거나 연과 연이거나 제목과 내용 간에 긴장이 발생하기 마련이데, 이 시집은 시인의 삶과 시집 혹은 시라..
내 정서는 이런 촌스러운 것이다. 내 시집에는 이런 촌놈임을 드러내는 것들이 좀 있다. 예전에는 부끄러워하던 촌놈이 이제는 자부심은 아니더라도 부끄럽지는 않다. 세월의 힘이거나 인식의 힘이다. 무당개구리 우물이 하늘을 엿본다 골짜기 하나가 산새들과 너구리 오소리 다람쥐 누..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어느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였다. 주인아주머니와 우리가 말렸지만 한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이 절까지 모두 불렀다. 포장마차에서 고성방가가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한은 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내린천에서 태어났다고 ..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승태 시인의 시를 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결락’이다. 자연과 문명, 과거와 현재,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결락을 메우기 위해 그의 시는 때로는 폭포처럼 내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전면적인 백기투항을 하기도 한다. “어둡고 깊..
짝사랑 풀벌레가 운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황금빛 나뭇잎이 노래한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거부하면서 너는 탄생한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 농부의 딸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였듯 나도 그대를 지키는 기사가 되어야 할까보다 기사도를 위해 그대는 공주가 ..
바람분교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방동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
11월은 신춘문예철이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이때면 문 닫아걸고 한 칼을 벼리는 이들이 있다. 이제는 아득해보인다. 1991년 군대를 제대하고 군 시절 경험을 시로 써 응모하였다. 그게 용케도 당선되었단 소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들었다. 열차에서 군용열차 뒤로 풍경이 달린다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