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탑에 기대어 / 한승태

공주탑에 기대어

- 뱀을 기다리며

 

 

아주 아주 오랜 전 이야기랍니다

그래요 이건 신기한 이야기랍니다

 

뇌우雷雨가 그친 어느 맑은 봄날 아침

그대는 폭우가 데려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려 피리를 불었을 뿐이지만

땅이 부르면 하늘이 답하듯

오래 전부터 합을 맞춰온 해금의 선율

 

아주 아주 오랜 전 이야기랍니다

이것은 세상에 없었던 이야기랍니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아름다운 일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일

왕가王家의 언덕을 넘나드는 소문 같은 일

더 깊어지고 더 어두워지는 일

현絃을 따라 사람과 짐승이 심장을 바꾸는 일

이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인가요?

 

아주 아주 오랜 전 이야기랍니다

상냥한 가슴에 가득한 이야기랍니다

 

애벌레가 꽃나무에서 몸 바꾸는 일

그대의 연주는 아지랑이 따라 우는 거

흩날리는 꽃잎도 다른 세상의 일 같은 거

고개 넘어 속살거려도 그대 옷자락이 날리는 거

꽃잎을 밀어내는 잎사귀의 힘 같은 거

결국에는 이승과 저승 국경을 넘나드는 거

 

아주 아주 오랜 전 이야기랍니다

일렁이는 물결에 의지한 마음이랍니다

 

상냥한 마음에서 추방당한 연인이여

날 위한 일이니 미워하지 말라 말하지요

온밤 별빛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는 거

내 눈물 상관없이 축제처럼 떠들썩거려도

나 이미 그대 음률에 목메인 악기랍니다

 

 

 

      

월간 <시인동네>  2018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