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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봄 바다 해가 뜨면 바다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빛나는 일떠뜸떠듬 빛나다가냉이꽃 피워 내듯 밀어 올리는 빛없던 마음이 봄이면 왜 생기는지 남들만큼 살아지려나입 밖에 말을 떼기 전에봄과 몸은 바다로 들어가고 뭍을 떠나며 애가 타는 건무엇이 가장 멀어져 보이는지아기, 집, 유채밭, 저녁 아기들은 한 번 울면 저녁까지 울고집은 폐질 얼굴처럼 뇌래지고 저녁까지유채순이 남아 있으려나후려치는 걱정에 숨 막혀두바다는 저녁까지 빛나고 몸은 봄을 기억하고바다는 봄 소라를 기억하고 빛처럼 울었네그림자처럼 울었네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걷는사람 중에서 바다는 매일 아침 태어나 빛난다. 매일 바다에 몸을 섞으며 사는 사람도 태어난 건 빛나기 위해서 일텐데. 몸은 봄을 기억하지만, 수압과 추위가 깊어질수록 ..
두양리 은행나무 고모가물에 빠져 죽었습니다화장터에서불이야 불이야고모야 고모야 하고 외쳐 불렀습니다불보다 더 뜨겁게 고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소리에 깜짝 놀라면영혼이 불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구백 살 넘은 은행나무가 불에 빠졌습니다닷새 엿새 물을 뿌렸습니다물보다 더 슬프게 울었습니다운다고 해결될 일 아니지만새순이 돋아났습니다고모가 없는데도 해는 떴고고모가 없는데도 빨래는 말랐고쑥과 머위가 제철의 냄새를 밀어 올렸습니다새순은 소리 없이 오고회복은 설명 없이 오고살아야 할 이유는거창한 깃발이 아니라무심히 돋아난 연두 한 잎으로 옵니다 석민재 시집 [친애하는 나의 애인들은 맨날 과거형] 시인동네 중에서 큰 산불에 같이 불탔으나 새로 싹을 틔우는 은행나무에 고모의 이야기를 겹쳤다. 화장한 죽은 고모는 다시 태어나..
겨울 우포 언 살 수면을 찢어 늪은 새들의 비상구를 만들어 놓았다 출렁이는 상처를 밟고 새들이 힘차게 떠나간 뒤 늪은 심장에 울던 새들의 발소리 기억하며 겨우내 상처를 열어 두었다 고향을 떠난 우리 언제나 어머니 상처에 돌아갈 수 있을까 김주대 시집 걷는사람. 중에서 우포늪은 어머니고 어머니는 우포늪인가? 살펴보자. 우포늪의 언 수면의 깨진 곳으로 새들이 날아가고 날아온다. '언 살 수면을 찢어'라는 표현에서 얼음이 깨지는 자연현상을 살이 찢어지는 출산으로 치환한 순간, 늪은 자연 풍경에서 고통을 느끼는 몸으로 바뀐다. 찢어짐이 시 전체를 떠받치는 알레고리(늪=몸=어머니)의 기둥이다. 왜 우포늪을 어머니와 연결했을까? 우포늪이 가진 이미지는 '철새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장소'이지만, 무엇보다 우..
김희선의 감상-한승태 김희선의 은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소설이다. 근데 왜 삼척인가? 하는 점은 아직도 의문이다. 많고 많은 장소 혹은 지명 중에 왜 삼척인가? 나로서야 삼척에 살고 있으니, 삼척이기 때문에 소설을 선택했지만, 굳이 삼척이 아니어도 적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작가는 현재 원주에서 약사와 소설가로 살고 있는데, 고향이 삼척인가? 아버지의 고향이 삼척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본 삼척에 관한 작품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김희선은 작가세계로 등단 이후 SF 기법으로 소설을 쓰며 주목받고 있다. 지난번 의 최은미 작가는 내 고향 후배이고 김희선은 대학 후배인데, 삼척을 소재로 쓰고 있어서 묘한 느낌이었다. 모두 훌륭한 후배들이다. 김희선의 소설대로라면 나는 삼척에 살고 있는 ..
구름 구름이란 단어만 생각했다하필 뛰다라는 동사가 떠올랐다구름이 뛰다라고 내뱉고 하늘을 보니정말 구름이 뛴다함께 뛰고 싶어서 나를 넣어줬다구름이 나와 뛴다뭔가 어색하다, 구름이 나와 뛰는 것인가어디서 구름이 나와서 뛰는 것인가나를 지우고 사슴을 넣는다구름이 사슴과 뛴다하늘을 보니 기다란 뿔을 가진 흰 사슴이여기 구름과 저기 구름 사이사이를 폴짝폴짝뒷산 너머까지도 오간다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다시 구름을 본다사슴과 구름이 컵 위에서 논다참, 어디까지 구름을 생각했더라그새 구름은 천공의 성몽실몽실 생크림 얹은 파란 하늘빗방울툭툭툭지상에 교신을 타전한다 오늘 구름은 여기까지 윤진화 시집 중에서 구름이란 단어만 생각했다,라는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행위로 상상력을 전개한다. 구름에 붙는 동사가 '뛰다'..
수미산 십이월,마른 나뭇가지 위에 어미 새가 집을 짓는다앙상한 바람 사이로고집멸도의 지푸라기를 얹는다하루 사흘 그리고 며칠,바닥에서 퍼드덕거리는 아기 개똥지빠귀모닥불이 훨훨 타고 있다훠이 워이,나지막이 저 먼발치서 들리는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겨울 잎새 하나,와불 와불 굴러다닌다 홍서연 시집 2026.---------------------------------한 그루 수미산이 보인다. 모닥불 속에 누가 소신공양하는가? 나뭇잎도 와불로 눕는다. (한승태)
봄의 경계 박라연 봄엔 말조심 경보를 내릴 일이다 마음은 봉지 단속을 더욱더 잘해야 한다 아무리 짧게 내뱉어도 한순간만 품어도 제 가려움을 못 견딘 씨앗들이 무엇이든 뚫고 머리를 내밀어버린다 봄 달 봄 태양이 더욱 그러하듯 멀리서 하는 말 멀리서 품는 마음들은 하늘의 귀까지 뚫을 듯 힘이 세어서다 - , 문학과지성 시인선 357 (2009.02)------------에너지가 넘치는 계절이다. 아 오늘부터 봄이다, 할 사이 없이 나도 모르게 불끈 솟는다면 봄이다. 조심할 일이다. 봄이라고 맘을 놓으면 먼 길 가는 경우도 생기는 게 봄이다. 삶과 죽음 사이, 거기에 봄이 있다. (한승태)
다이너마이트를 든 소녀 폐석산 중턱 오두막으로 이사 왔다석공 사택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 첫날 잠을 자려 누웠지만잠은 안 오고방바닥 아래에선 쾅쾅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 이불을 똘똘 말다 깬 아침갱도에서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는 소리라 했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아버지가 굴착기를 들고검은 석탄을 깨는 소리였다더는 그 소리가 두렵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어른이 되면세상 어둠 깨는다이너마이트 하나 들겠다다짐했다 정지민 청소년 시집 중에서 '방바닥 아래에선 쾅쾅 소리가 들렸다'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가장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공간이 방인데 그 방 아래서 석탄을 깨는 다이너마트가 터진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 안의 방은 여러모로 은유적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가꾸는 집 안의 따스한 방은 아버지의 막장이 무너지면..
시 시를 쓰는 일은 대체로 정신 나간 짓집 나가 이리저리 떠도는 맨정신을 찾고또 찾아 헤매는 일 (더 읽고 싶으면여기를 천천히 두어 번문질러주세요) 시 이 시는 눈 앞을 지나가는 시입니다거드리지 마세요 서정적 오늘 같은 날은 돌아서서 좀 울고 싶다왜 우냐고 물으면 훌쩍거리는 빗소리의 리듬에삶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근데, 자기가 박용래야 뭐야(멋쩍게 웃으며) 울음은 급 취소다쪽 팔리는 건 한 순간이다서정적으로 늙으면 이렇다니까 박세현 시집 중에서 박세현 시집 의 주인공, 3인칭 단수의 그는 화자이면서 시인이고 시인이면서 그는 모노 영화의 배우이다. 그는 시인의 밖을 떠도는 자다. 아무래도 안 보다는 밖이, 아니 양발을 걸치고 산다. 아니 그는 밖이 어울리게 살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부탁 길상사에 갔다부처님 앞에 오천 원을 놓고 동생이 절을 한다엉겁결에 나도 삼만 원이 든 바지 주머니에서 오천 원을 꺼내 부처님 앞에 놓고곁눈질로 동생 따라 절을 한다스님 염불 소리에절 한 번 하고 가족 건강 부탁드리고절 한 번 하고 아들 승진 부탁드리고절 한 번 하고 나는 100세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부탁 중인데무릎 끊을 때마다바지 주머니에서 이만 오천 원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슬쩍슬쩍 밀어 넣었다부처님 미소가 얼굴에 닿아 쓰으윽 문지르며동생 따라절을 멈출 수 없는 나는무릎이 저리고 온몸이 땀방울로 뒤범벅이 돼촛불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자꾸 흔들렸다부탁드릴 것이 아직 많이 남았는지동생의 절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오천 원어치보다 더 많은 부탁을 해죄송합니다정솔 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