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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바람분교장 2018. 7. 23. 13:25

우리말 표현에서 정말 많이 등장하는 쓸데없는 들러리, '적', '의', '것', '들'을 없애면 문장이 깔끔해진다.         

사회적 현상, 문제의 해결 → 사회 현상, 문제 해결

'것'은 의미를 더하지 않은 채로 문장을 길고 모호하게 만든다. 복수 접미사 '들'은 영어 표현의 번역체에서 왔다. 우리 말은 원래 복수형이라는 것이 없다. 의미상 복수가 분명한 경우 필요 없는 표현이다.

문들이 열리자 그는 관람자들의 무리에 휩쓸려 전람실들이 줄지어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이 열리자 그는 관람자 무리에 휩쓸려 전람실이 줄지어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있는'이라는 표현도 별 의미 없이 쓰인다. 동사로서 진행을, 형용사로서 상태를 나타내는데, 실제로는 의미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현재형으로 써도 될 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쓰는 경우가 그렇다.

멸치는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다.
→ 멸치는 바싹 마른 상태였다.


'관계에 있어', '~함에 있어'와 같은 표현도 쓸데없이 늘어진 표현이다.

그 여배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 그 여배우와 가까운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에 대한', '~들 중 하나', '~ 같은 경우', '~에 의한' 등의 표현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을 쓰는 대신 모호하게 에둘러 하는 표현이다. 정확한 의미로 바꿔 써야 한다.

시스템 고장에 의한 동작 오류로 인해 발생한 사고
→ 시스템 고장에 따른 오동작 때문에 발생한 사고


'~에'는 무생물에, '~에게'는 생물에 붙인다. '~에게서'는 '~에게'와 '~에서'가 합쳐진 조사인데, 딱히 쓸 필요가 없다면 피해야 할 표현이다.

적국에 선전 포고를 하다.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아이들.


피동과 사동도 주의해서 쓴다. 피동과 사동이 성립하지 않는 동사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더불어, 피동과 사동을 두 번, 세 번씩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소개시켜 주다'처럼 소개를 '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기'까지 하면 뭘 더 시켜줘야 할지 막막하다. 소개하면 그만이다.

둘로 나뉘어진 조국, 그런대로 살아지더라고요.
→ 둘로 나뉜(나누어진) 조국, 그런대로 살게 되더라고요.


접속사는 사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400쪽에 달하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접속사가 단 한 번 나온다고 한다. 접속사가 없으면 독자가 길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거나 기우다.


'문장 다듬기'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준엄하다. 우리말의 흐름을 살피라는 조언이다. 번역체가 오염시키는 우리말 문장이 많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장 안에서 주어, 목적어, 술어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배치되어야 한다. 우리말에는 조사가 있어 주어나 목적어가 아무 위치에 있더라도 뜻은 통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문장은 아니다.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어떤가? 잘 읽히고 뜻도 잘 통한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고, 다음 문장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처음 문장이 번역체에 물든 문장이라는 사실이 이제 잘 보인다.


문장의 주인은 전지적 시점의 작가, 즉 내가 아니고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다. 전지적 시점에서 쓰다 보면, 해야 할 이야기를 생략하고, 논리 사이를 도약할 위험이 있다. 기억하자. 문장의 주인은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다.


문장 다듬기에 관한 또 하나의 좋은 책, 장순욱의 <글쓰기 지우고 줄이고 바꿔라>를 보면, 문장이 깔끔한지 아닌지는 호흡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소리 내어 읽어보라는 것이다. 읽다가 혀가 꼬이는 문장은 더 깔끔하게 고칠 구석이 있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