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181)
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어느 여인에게 샤를르 보들레르 / 윤영애 역 거리는 내 주위에서 귀 아프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큰 키에 날씬한 한 여인이 상복을 차려입고 화사한 한 손으로 가에 꽃무늬가 장식된 치맛자락 치켜 흔들며 장중한 고통에 앃여 지나갔다; 그녀는 조각상 같은 다리하며 민첨하고..
이별이 오면 문태준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포옹 박용하 희미한 어둠 속 계단에 서서 그대 등 뒤로 손을 까지 껴서 이승을 불밝히고 심장 저 멀리 낮게 엎드린 눈물 그대 머리카락 적시러 지상으로 온다. 2010.1.1 ---------- 용하 형으로부터 연하장이 왔다. 새해 들어 무지하게, 아니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이었다. 아마도 먼산이 보이지 않고 코 앞만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
호숫가 학교 조 성 림 푸른 샛별로 세수를 하고 나오는 너희들이 모여 여기, 호수를 이룬다 너희는 자전거로 태양을 굴리고 오거나 걸어서 개울가 산사나무로 푸르게 얘기하며 오고 있구나 언제나 봄은 너희에게서 꿈꾸는 것 때로 휘날리는 꽃잎이며 노을이 어찌 너희를 앞질러갈 수 있겠는가 새들은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세르게이 에세닌 *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고요함과 행복이 있는 그 나라로, 어쩌면 나도 곧 길을 떠날는지 모른다. 덧없는 세간살이를 치워야 한다. 그리운 자작나무 숲이여! 너 대지여! 그리고 너 모래벌판이여! 이러한 떠나가는 동포들의 무리 앞에..
소박한 시 Jose Marti 나는 종려나무 고장에서 자라난 순박하고 성실한 사내랍니다.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여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내 시 구절들은 연두빛이지만 늘 정열에 활활 타고 있는 진홍색이랍니다. 나의 시는 상처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 사슴과 같습니다. 7월이..
겨울을 기다리며 서경구 외투와 장갑을 잊고 단열창 닫으며 더운 물에 머리 감고 이제 더 이상 아무 이웃도 그립지 않은 우리에게 사랑보다, 사랑을 감추려고 껴안던 추억을 끊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이제 겨울은 무엇인가. 소리만으로도 너끈히 밤을 가리는 문풍지와 쩍쩍 달라붙는 手人事의 끔찍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