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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학교 / 조성림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호숫가 학교 / 조성림

바람분교장 2009. 5. 16. 18:39

 

호숫가 학교

                 조 성 림

 

 

 

푸른 샛별로 세수를 하고 나오는 너희들이 모여

여기, 호수를 이룬다

 

너희는 자전거로 태양을 굴리고 오거나

걸어서 

개울가 산사나무로 푸르게 얘기하며 오고 있구나

 

언제나 봄은 너희에게서 꿈꾸는 것

때로 휘날리는 꽃잎이며 노을이

어찌 너희를 앞질러갈 수 있겠는가

 

새들은 늘 너희들 날개 속에서 날아갔고

나무들 또한 너희에게서 숲을 이루거늘

저 강물을 따라가 보아라

강기슭도 단단한 하루의 노래가 되고

밤을 적시던 등불들도 얼마나 따뜻한 옷감이 되는가

 

때로 야콘을 파 헤집고

고구마의 굵은 야심작을 찌고

옥수수의 음률을 뜯으며

우리들의 시간도 익어갔거늘

 

다시 별들로 돌아오는 우리들의 호수를 잊지 말라

너희들 가슴에 긴긴 편지로 남아

너희들을 잊지 못해

여기서 동화처럼 늙어갈 이 호숫가 학교를

 

 

 

 

 

     아름다운 호숫가의 학교를 스승의 날 찾았다. 시인은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가 내게 아이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달라고 오래 전부터 졸랐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러마 하고 약속하였지만 그 후로도 그는 가끔 잊을만하면 전화를 주곤 했다. 나를 못믿어서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그의 애정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그의 학생들에게 주는 애정을 나는 이 시 하나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때로 야콘을 파 헤집고 /고구마의 굵은 야심작을 찌고 / 옥수수의 음률을 뜯으며' 그들의 시간도 익어 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구체성이 없었다면 적당히 감상을 자극하는 그런 시 하나로 존재했으리라. 그러나 그의 시는 구체성을 얻었고, 그래서 그의 학생들에는 두고 두고 언제나 꺼내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