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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미인 / 김수영

바람분교장 2010. 1. 29. 19:17

미인 - Y여사에게 

 

                    김수영

 


미인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미인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미인이면 미인일수록 그럴 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땋놓는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 1967.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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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와 관련하여 이듬해 쓴 수필이 보인다. 시인에게 미인은 무엇인가?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한 통찰이 느껴진다.

 

 

 

미인 / 김수영

 

 

삼십대까지는 여자와 돈의 유혹에 대한 조심을 처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방심이 약이 되고 있다. 되도록 미인을 경원하지 않으려고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돈도 벌어보려고 애를 쓴다. 없는 사람의 처지는 있는 사람은 모른다고 하면서 있는 사람을 나무라는 없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한 공감도 소중하지만, 사실은 있는 사람의 처지를 알아주는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한 없는 사람으로서의 공감이 따지고 보면 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역시 가난하게 살기는 쉽지만 돈을 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태와, 또한 나이와, 게다가 여태까지 쌓아온 선비로서의 지나친 수양의 탓 때문인지, 좌우간 요즘의 나로서는 미인과 돈에 대한 방심이 그것들에 대한 지난날의 조심보다도 몇 곱절 더 어렵다.

 

그런데 미인과 돈은 이것이 따로따로 분리되면 재미가 없다. 미인은 돈을 가져야 하고 돈은 미인에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인과 돈의 인연이 가까운 경우를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흔히 우리들의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의 대부분이 돈이 미인을 갖게 되는 수가 많지 미인이 돈을 갖게 되는 일이 드물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이는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으니, 현대미학의 제1조건인 동적(動的) 미를 갖추려면 미인은 반드시 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돈 있는 미인을 미인으로 생각하려면, 있는 사람의 처지에 공감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돈이 있어야 한다.

 

시를 쓰는 나의 친구들 중에는 나의 시에 <여편네>만이 많이 나오고 진짜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너무 유식하거나 혹은 너무 무식해서 이 누구나 다 아는 속세의 철학을 전혀 모르거나 혹은 잠시라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시를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만각(晩覺)은 나로서는 만권의 책이 지혜에 해당하는 것이거나 만 권의 그것을 잊어 버리는, 완전한 속화(俗化)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미인이 돈을 갖게 되는> 미의 교훈을 나는 요즘 어떤 미인을 통해서 배웠다.

 

 

<196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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