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자작나무 뱀파이어 / 박정대 본문
자작나무 뱀파이어
박정대
그리움이 이빨처럼 자라난다
시간은 빨래집게에 집혀 짐승처럼 울부짖고
바다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별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상처,
눈물보다 더 깊게 빛난다, 聖所
별들의 운하가 끝나는 곳
그곳을 지나 이빨을 박을 수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차갑고 딱딱한 공기가
나는 좋다, 어두운 밤이 오면
내 영혼은 자작나무의 육체로 환생한다
내 영혼의 살결을 부벼대는
싸늘한 겨울 바람이 나는 좋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욕망이 고드름처럼 익어간다
눈에 덮인 깊은 산속, 밤새 눈길을 걸어서라도
뿌리채 너에게로 갈 테다
그러나 네 몸의 숲속에는
아직 내가 대적할 수 없는
무서운 짐승이 산다
박정대 시집 <내 청춘의 결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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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는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적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좋은 말인지 누가 될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이 시대가 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시적 분위기를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시적 전략은 시적 분위기의 창조에 전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소재가 혁명가, 체 게바라, 무협지의, 무협 영화의 검객, 음악, 그리고 비밀 통신이라는 지금은 스러져가고 영화에서는 회고할 듯한 분위기를 현재에 살려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조금쯤 물러서 있는 것으로 보이나, 여기서도 그의 전략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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