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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짐승이 되어가는 심정 이근화 아침의 공기와 저녁의 공기는 달라 나의 코가 노을처럼 섬세해진다 하루는 세 개의 하루로 일 년은 스물아홉 개의 계절이 있다 나의 입술에 너의 이름을 슬며시 올려본다 나의 털이 쭈뼛 서지만 그런 건 기분이라고 하지 않아 나의 귀는 이제 식..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한승태(학예연구사) 얼마 전 기독교 단체의 청원으로 과학 교과서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이를 반영한 과학 교과서 나올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황당한 얘기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 논의가 참 재미있다.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멀리 있는 무덤 (멀리 있는 빛) - 김영태 유월 십륙일 그대 제일(祭日)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금년에도 나는 생시(生時)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
3분간의 호수 서동욱 비가 온 뒤 플라자 호텔 앞 도로는 수면이 맑게 닦인 호수 같다 붉은 신호등이 차들의 침범을 막아 서울 한복판에 3분간 딱 켜져 있는 호수 그 위를 잠자리 한 마리가 공중에 필기체를 휘갈기며 날아간다 가는 꼬리에 뽀글뽀글 가득 찬 저..
네 노새 마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노새를 가지고 들로 나가는 사내 네 사람 중, 얼룩빼기 노새를 데리고 가는 이는 검고 키가 크지 노새를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는 사내 네 사람 중, 얼룩빼기 노새를 데리고 가는 이가 내 영혼을 앗아갔네. 노새를 데리고 강으로 가는 사내 네 사람 ..
동물원에 대해 생각 할것, 우리에게 동물원은 무엇인가? 이은이에게도 물어볼 것, 예전에 동물원에 대해 쓴 소설은 어떻게 구상했는지.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 치의 방과 한 달 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
봄비 한승태 흰 사기요강에 부서지는 별빛과 가랑이 벌린 山할미 엉덩이 아래는 천개의 봉우리와 천개의 골짜기 아이를 비워낸 자리엔 소쩍새 울음 닮은 삼백예순날 산 주름만 남아 주름이 주름을 불러 한숨을 만들고 한숨 차곡차곡 접혀서 가없는 넓이로 눈앞에 막막하게 펼쳐져 올 때 ..
“시는 실천적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 까다로운 내 친구들에게 / 폴 엘뤼아르 만약 내가 숲속의 태양이 침대 속에 몸을 맡긴 여자의 아랫배 같다고 말하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내 욕망을 이해하지 만약 내가 비 오는 날의 수정방울 소리가 사랑의 무료함 속에서는 늘 울린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