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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한승태 본문
봄비
한승태
흰 사기요강에 부서지는 별빛과
가랑이 벌린 山할미 엉덩이 아래는
천개의 봉우리와 천개의 골짜기
아이를 비워낸 자리엔 소쩍새 울음 닮은
삼백예순날 산 주름만 남아
주름이 주름을 불러 한숨을 만들고
한숨 차곡차곡 접혀서 가없는 넓이로
눈앞에 막막하게 펼쳐져 올 때
뒤치다꺼리로 일월성신은
일만 년 하늘을 돌고도 아직 모자라
서리는 해마다 내리고 내려 버캐처럼 쌓여도
늘어진 저 배는 쉬는 중인지 부푸는 것인지
쇠리쇠리한 햇발에 주름이 접혀서
길을 걸으면 뒷덜미가 따뜻해지고
웃음도 따라오는 것이다 내 몸주는
맹인의 욕망이 깃든 햇살일지니
할머니, 하고 부르면 산은
오줌소태마냥 쬐금쬐금 되물으며
내 배꼽으로 스며들어, 골짜기가 숨겨둔
항아리란 항아리 죄다 갑자기
간장 달이는 냄새를 진하게 날리고
神들은 내 안으로 마구 들어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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