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서동욱 3분간의 호수 본문
3분간의 호수
서동욱
비가 온 뒤 플라자 호텔 앞 도로는
수면이 맑게 닦인 호수 같다
붉은 신호등이 차들의 침범을 막아 서울
한복판에 3분간 딱
켜져 있는 호수
그 위를 잠자리 한 마리가
공중에 필기체를 휘갈기며 날아간다
가는 꼬리에 뽀글뽀글 가득 찬 저
낳고 싶다는 본능이, 겨우 물로 매끼한 정도의
수심 2mm의 호수에 혹했다
저쪽 횡단보도엔 벌써
파란 등이 이쪽으로 건너오겠다는 듯 깜박거리고 이제
10초 후면 배때기에 타이어 자국 새기며 사라질 호수
물 위를 꼬리로 톡톡 쳐보고 기쁜 듯 홀라당거리며
S자로 6자로 소란스레 비행하는 저 욕망
배고 낳고 죽는 모든 껍데기들을 지구의 탄생부터
떠받치고 있던 저 에너지는
그러나 지구에서는 천수를 다했다는 듯,
이윽고 우주의 시간이 땡 파란 불로 바뀌며
소공로에서 좌회전 대기하고 있던 개들이 풀려나와
덮쳐버린다
사족 한마디 : 우리는 세상의 어떤 깊이, 삶의 깊이, 경험하지 않으면 동의하기 어려운, 뭐 이런 측정할 수없는 그런 얘기를 할 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때, 최소한 이 세상은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생성되지는 않았다. 정말 우연에 불과한 것이 이 세상이고 우주이다. 당신의 삶도 우연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아무 의미없던 것이 갑자기 소소한 의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어제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오늘 내 생애의 선택을 죄우하는 일로 변하기도 한다. 돌아보라 당신의 관심과 선택을 기다리는 무수한 생명들을, 당신과 인연을 맺고 싶어한다. 그래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혼잣말 > 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짐승이 되어가는 심정 (0) | 2012.08.15 |
---|---|
멀리 있는 무덤 (멀리 있는 빛)/김영태 (0) | 2012.06.05 |
네 노새 마부 _ 로르카 (0) | 2012.05.13 |
2012년 4월 23일 오전 11:55 (0) | 2012.04.23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0) | 2012.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