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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오후 한 시 한승태 강이 흐르고 어느새 工團에서 나온 사내가 서있고 야금야금 먹는 강변을 따라 점심이 흐른다 햇살은 강 건너 강아지풀 앞에 몸을 숙이고 배터진 소파를 삼키는 갈퀴덩굴로 더 집요하다 江岸에는 개구리와 배추흰나비와 개구리밥과 골풀 사마귀 달팽이 물방개 노란점나나니나 호리..
금낭화 한승태 유월 한낮 어린 딸을 데리고 옛 마을의 山寺로 산책 간다 경내 스피커에선 목탁소리 대신 녹음한 부처 말씀만 또랑또랑 흘러나오고 사천왕 대신 개 두 마리 배 내놓고 낮잠 잔다 햇살은 화엄경 마냥 저리 넓어서 설법 위로 떠도는 자벌레가 무량한 햇살의 반죽을 펴놓고 주무른다 테이..
결혼식장에서 한승태 가을은 더욱 분주하게 나뭇잎을 떨구고 나는 기억도 희미한, 길 따라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 친구가 꼭 잡은 나무 둥지 아래로 한 광주리의 단풍잎이 오래된 안부처럼 떨어진다 벌써 애가 둘이라는데, 새삼스레 불쑥 은행잎 같은 엽서를 내밀었을까 청첩장에는 국수가락처럼 풀리..
뒤란 한승태 내 몸이 더 작아지는 오후 두 시다 발꿈치가 가렵고 마침내 측백나무 그림자가 끌고 가는, 푸른 그늘 위에 떠있다 은비늘 귀향의 돛도 없다 내린천을 거슬러 어둠이 환히 터지는 共鳴의 방 졸음이 축축하다 나 이미 햇살 깊어져 혼잣말이 무너져 내리고 銅鏡을 들여다보던 어린 넋, 퍼내고..
사랑은 언제나 -사진 이야기3 한승태 그것은 거대한 감옥 또는 사원일 터이다 넝쿨나무 두 그루가 좌우에서 자라 올라 서로를 비끄러매듯 남자와 여자는 키스를 하고 있다 흡사 그들은 두 나무의 뿌리 같다 벽돌이 촘촘히 쌓여진 건물은 한 쪽 면만을 보여 준다 그저 벽이다 그들이 앉은 돌 벤치는 차..
먼 가을 구릉 같은 한승태 먼 가을 구릉들이 봉곳하고 구름은 젖꼭지를 세운다 철새들의 길을 황사가 급히 지우고 내몽고의 모래무덤이 통째로 날아온다 온통 비 맞고 돌아온 유년 까맣게 마른 깻섶으로 아랫목을 덥히고 내 배꼽과 성기에서 배어나던 햇볕 졸은 냄새를 따라 낙숫물로 튀어 오르던 너..
바람분교 한승태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방동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 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는지 ..
무당개구리 한승태 우물이 하늘을 엿본다 골짜기 하나가 산새들과 너구리 오소리 다람쥐 누렁소나 고라니 휑한 눈 속 다섯 호 화전마을 속내를 일일이 간섭하던 그 무당 첫새벽 그 많던 소원은 다 그녀의 소관 온밤 내 컬컬한 별빛들의 성화로 맵게 반짝이다가 순이가 던진 바가지로 돌이끼에 튀어 오..
移葬 한승태 한 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한 자리에 모였다 상남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城南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 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대신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