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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시 발표작

Living next door to Alice

바람분교장 2008. 7. 25. 11:58

 

 

 

Living next door to Alice          

                       

                                한승태


은사시나무 이파리가 바람을 다스리고

사금파리가 노래하는 아침이다

알궁둥이처럼 뽀얀 봉당에 앉아

스모키를 들었다 아무 뜻도 모르고

1970년대를 들었다 아부지가

옥수수증산왕으로 받은 쏘니카세트와

덤으로 딸려 온 스모키 테이프

달빛 아래 연인의 마음도

어느 먼 이국 땅 옆집 살던 엘리스도

그것이 왜 쏘니고 스모키인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이민 간 네가 생각나고 마냥

봉당에 앉아 붉은 강낭콩이나 까며

아침이슬을 말렸다 씨르래기와 참매미는

솔숲과 측백나무 울타리에 창문을 열고

하늘은 느릿느릿 내려와 시시때때로

뭔 뜻인지는 몰라도 뱃속 가득

먼 나라의 햇살을 품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바람에 몸을 그을리며

너의 새끼손가락과 강낭콩 껍질로

방석이나 엮으며 점점 느슨해지는

네 얼굴을 되새김질하곤 했다



현대문학 200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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