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결혼식장에서 본문
결혼식장에서
한승태
가을은 더욱 분주하게 나뭇잎을 떨구고
나는 기억도 희미한, 길 따라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
친구가 꼭 잡은 나무 둥지 아래로
한 광주리의 단풍잎이 오래된 안부처럼 떨어진다
벌써 애가 둘이라는데, 새삼스레
불쑥 은행잎 같은 엽서를 내밀었을까
청첩장에는 국수가락처럼 풀리는 오후가
옛 마을의 지도를 그리고 지금은 지워진
아버지의 기억 끝까지 빠지는 무논과
서서 마른 옥수숫대가 햇살을 부비고 있다
한 쪽 뺨이 얼얼했다
땅 있던 이들은 있는 대로
없던 이들은 없는 대로 흩어져
다섯 해만에 불쑥 손 내미는 마을 옛 이름
그랬다, 개발지구 말뚝이 박히고 나서도
오랫동안 허깨비처럼 전신주에 기댄 석양도
식어버린 잔치음식처럼 더부룩하고 허한
빈손을 감추고 서로가 낯설은 척 어설픈
햇살이 구정물처럼 버려지고 있었다
현대문학200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