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승태 (68)
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깔나무가 물들면 가을 끝자락이다. 가장 늦게 물드는 나무기 때문이다. 겨울까지 이깔나무는 물들다 비 내리듯 잎을 떨군다. 그 아래 서면 떨어지는 소리가 가랑비 내리는 거 같다. 이깔나무는 잎갈나무 또 낙엽송으로도 불린다. 현재 남쪽 산에 식재된 이깔나무는 일본 낙엽송이다. 우리 고유의 이깔나무는 백두산 아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백두산에서 캠핑을 한 호주의 캠퍼가 전한다. 우리 산에 식재된 낙엽송 군락이 있는 자리는 1968년 이전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공비가 있던 시절 그들을 버덩으로 끌어내려 독가촌을 만들었다. 그들의 빈 자리에 식재가 된 게 낙엽송이다. 그러니까 남쪽 산에 군락을 이루는 낙엽송이 자라는 곳은 화전민의 흔적일 수 있다. 평창, 인제와 홍천의 내면 쪽에 낙엽송이 많은 건 3차..
오래된 정원 전윤호 아버지 집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네 지금은 사라진 마당에 봄이면 향기가 먼저 오고 문을 열면 꽃이 피었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연탄불이 꺼진 방 조퇴하고 누워 있으면 나뭇가지가 이마를 짚어주었네 나와 자던 고양이가 올라가던 나무 그 앞에 서면 우주가 나를 반겼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없었네 라일락 나무가 내 방 앞을 지켰네 봄이면 아직도 열이 오르고 몸살을 앓는데 아버지 집은 내 안에 있어 기침할 때마다 라알락 향기가 올라온다네 전윤호 시집 중에서 오래된 정원은 우주의 정원이고 내 안의 정원이고 어머니의 품이다. 그 정원에는 우주나무, 즉 어머니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라일락이다. 문제는 그 정원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고, 그 집에는 어머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없는 집은 집..
나는 노새다 _한승태 상상의 동물이 아니다 노새는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서 난 튀기다 수말과 암탕나귀 사이에서 나온 새끼는 버새다 노새와 버새는 새끼를 낳지 못하는 불구다 크기는 말만하나 생김새는 당나귀를 닮았다 한때 노동 세계에서 힘깨나 쓰는 것으로 인기였다 몸은 튼튼하고 아무거나 잘 먹고 변덕 심한 주인도 잘 견디어 정신병에 걸리는 일도 없다 말없이 무거운 짐과 외로운 길도 능히 견딘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다
오늘은 애니메이션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소개합니다. 이 내용은 도서 <#아니마>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하면 사람들은 월트 디즈니를 떠올립니다. 애니메이션이 지금의 산업으로 발전하는데 디즈니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무엇이 관객들을 흥분시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파아란 하늘이 보이곤 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그래서 난 그만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11월 / 한승태 어깨 기운 나무 전신주 가물거리다 흐릿하고 고요하다 깊어진다 햇살은 노드리듯 날비처럼 나리다 골짜기마다 고이고 고여서 날개를 접은 까마귀 하나 눈이 멀었다 이승의 반대쪽으로 기울어진 그림자 볕바른 도사리나 마른 삭정이처럼 오래 마르고 있다 이깔나무 해 바른..
사치奢侈 낮잠 자고 일요일 오후를 빈둥거렸다 초등생 딸이 요리책 펴고 반죽을 주무르자 서서히 노을은 창으로 들어와 거실에 가득 찼다 책을 뒤적이고 채널을 돌리다 음악을 바꾸고 저녁 곁을 지키며 나는 괜히 서성거렸다 일주일을 한 달을 무엇을 바라 달려왔던가 기억해주지 않는 ..
잠에 들다 세상 소리 다 듣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촛불 유리창마다 그 여리고 긴 손가락들 걱정이란 걱정 몸에 다 들이고 오히려 중심은 텅 비어 아스팔트에서 피뢰침 너머 구름까지 소리를 울려 하늘을 둥글게 감싸 안는 범종 오랜 예언 끝에 서서히 움직이는 당신 물방울 오시네 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