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잠에 들다 / 한승태 본문

시창작/시 발표작

잠에 들다 / 한승태

바람분교장 2018. 10. 15. 16:36

잠에 들다

 

 

 

세상 소리 다 듣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촛불

유리창마다 그 여리고 긴 손가락들

걱정이란 걱정 몸에 다 들이고 오히려 중심은 텅 비어

아스팔트에서 피뢰침 너머 구름까지

소리를 울려 하늘을 둥글게 감싸 안는 범종

오랜 예언 끝에 서서히 움직이는 당신

 

물방울 오시네

 

호령하듯 산 너머 오시는 너울 파도

베란다 장독대 뚜껑일랑 서둘러 덮고빨래도 걷고

갈매기 날개로 사선으로 내려앉으려다

살구나무와 후박나무 이파리가 희번득 놀라고

아파트 벽 앞에 몸을 일으켜 닫힌 창문 두드리네

과 동 사이 느티나무 철없이손을 흔들고

바람이 쓰르라미를 먹고 쓰르라미는 휘파람새를 먹고

살구는 걱정을 떨구고 고춧대를 쓰러트리고

 

물방울 오시네

 

내 귀는 구름으로 부풀다 가물가물하고

악몽을 밟고 안으로 쓱 들어오시는 고래의 보살행

전생에서 현생까지 물방울 깊어지는 소리

손가락 끝에서 천만 촛불 타오르네

 

 

계간 <시인수첩> 2018. 겨울호 

 

 


'시창작 > 시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 한승태  (0) 2018.11.02
사치 / 한승태  (0) 2018.10.15
탑골공원 / 한승태   (0) 2018.10.15
와우 / 한승태  (0) 2018.10.15
짝사랑 / 한승태  (0) 201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