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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오래된 정원

바람분교장 2020. 7. 3. 15:21

오래된 정원

 

 

전윤호

 

아버지 집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네

지금은 사라진 마당에

봄이면 향기가 먼저 오고

문을 열면 꽃이 피었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연탄불이 꺼진 방

조퇴하고 누워 있으면

나뭇가지가 이마를 짚어주었네

나와 자던 고양이가 올라가던 나무

그 앞에 서면 우주가 나를 반겼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없었네

라일락 나무가 내 방 앞을 지켰네

봄이면 아직도 열이 오르고

몸살을 앓는데

아버지 집은 내 안에 있어

기침할 때마다 라알락 향기가 올라온다네

 

 

전윤호 시집 <슬픈도 깊어지면 힘이 세다> 중에서

 


오래된 정원은 우주의 정원이고 내 안의 정원이고 어머니의 품이다. 그 정원에는 우주나무, 즉 어머니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라일락이다. 문제는 그 정원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고, 그 집에는 어머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집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대신하는 라일락 나무가 있어, 몸살나 조퇴하고 불기 없는 찬방에 누운 내게 이마를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그 나무에 올라 어리광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를 이토록 아름답게 극복하는 예는 드물다. 이 시를 프로이드나 라깡을 들이대며 읽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무가 짚어주는 이마를 갖고 싶어라.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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