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11월,이라는 말 본문
이깔나무가 물들면 가을 끝자락이다. 가장 늦게 물드는 나무기 때문이다. 겨울까지 이깔나무는 물들다 비 내리듯 잎을 떨군다. 그 아래 서면 떨어지는 소리가 가랑비 내리는 거 같다.
이깔나무는 잎갈나무 또 낙엽송으로도 불린다. 현재 남쪽 산에 식재된 이깔나무는 일본 낙엽송이다. 우리 고유의 이깔나무는 백두산 아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백두산에서 캠핑을 한 호주의 캠퍼가 전한다. 우리 산에 식재된 낙엽송 군락이 있는 자리는 1968년 이전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공비가 있던 시절 그들을 버덩으로 끌어내려 독가촌을 만들었다. 그들의 빈 자리에 식재가 된 게 낙엽송이다. 그러니까 남쪽 산에 군락을 이루는 낙엽송이 자라는 곳은 화전민의 흔적일 수 있다. 평창, 인제와 홍천의 내면 쪽에 낙엽송이 많은 건 3차 동학 전쟁 이후 살아남은 이들이 산 속에 숨어 산 까닭이다.
나는 IMF시절 고향의 그런 산자락을 드나들었다. 골짜기에 무너진 빈집마다 내가 있었다.
11월
어깨 기운 나무 전신주
가물거리다 흐릿하고 고요하다 깊어진다
햇살은 노드리듯 날비처럼 나리다
골짜기마다 고이고 고여서
날개를 접은 까마귀 하나 눈이 멀었다
이승의 반대쪽으로 기울어진 그림자
볕바른 도사리나 마른 삭정이처럼 오래
마르고 있다
이깔나무 해 바른 등성이마다
털갈이 하는 짐승들의 숨소리 더 깊어지고
푸섶길마다 햇살은 실없이 건너뛴다
타버린 나무둥치 아래로
쑥부쟁이나 구절초 감국 뭐 이런 것들도
어서 추워져서 눈물을 말리고 싶다는 듯
시베리아 찬바람을 불러들인다
한 사내가 밀고 나갔다
난기류에 꺾이고 밀고 밀려서는
더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아홉사리재
배고픈 젖꼭지마냥 쪼글쪼글해지고
주름 깊은 아스팔트 위에 두 발이 푹푹 빠져
깃털 빠진 한 生을 토해내게도 하는 것이다
다른 생을 지나는 구름에게는
시집 <바람분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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