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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내 정서는 이런 촌스러운 것이다. 내 시집에는 이런 촌놈임을 드러내는 것들이 좀 있다. 예전에는 부끄러워하던 촌놈이 이제는 자부심은 아니더라도 부끄럽지는 않다. 세월의 힘이거나 인식의 힘이다. 무당개구리 우물이 하늘을 엿본다 골짜기 하나가 산새들과 너구리 오소리 다람쥐 누..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어느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였다. 주인아주머니와 우리가 말렸지만 한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이 절까지 모두 불렀다. 포장마차에서 고성방가가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한은 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내린천에서 태어났다고 ..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추천글 한승태 시인의 시를 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결락’이다. 자연과 문명, 과거와 현재,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결락을 메우기 위해 그의 시는 때로는 폭포처럼 내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전면적인 백기투항을 하기도 한다. “어둡고 깊..
율가(栗家)/이소회 갓 삶은 뜨끈한 밤을 큰 칼로 딱, 갈랐을 때 거기 내가 누워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레가 처음 들어간 문, 언제나 처음은 쉽게 열리는 작은 씨방 작은 알 연한 꿈처럼 함께 자랐네 통통하니 쭈글거리며 게을러지도록 얼마나 부지런히 밥과 집을 닮아갔는지 참 ..
짝사랑 풀벌레가 운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황금빛 나뭇잎이 노래한다고 내가 넘어가나봐라 거부하면서 너는 탄생한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 농부의 딸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였듯 나도 그대를 지키는 기사가 되어야 할까보다 기사도를 위해 그대는 공주가 ..
이장(移葬) 한 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상남(上南)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城南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 대신 몇 가..
바람분교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방동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
11월은 신춘문예철이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이때면 문 닫아걸고 한 칼을 벼리는 이들이 있다. 이제는 아득해보인다. 1991년 군대를 제대하고 군 시절 경험을 시로 써 응모하였다. 그게 용케도 당선되었단 소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들었다. 열차에서 군용열차 뒤로 풍경이 달린다 기차..
다시 겨울이 오고 저 남쪽 나라에서는 지나는 새들이 병원균을 퍼트리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오지. 2011년 겨울 난 인간의 빙하기가 다시 오는 줄 알았다. 죽음이 벌판을 바람처럼 쏘다녔다. 숨 쉬기도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나와 마을 한파와 소독약으로 온통 회칠한 골짜기 마을 조류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