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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바라기 노리코 본문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파아란 하늘이 보이곤 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에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그래서 난 그만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다정한 선물을 내게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깨끗한 눈빛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딱딱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패했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수가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흘러넘쳤다
금연을 깼을 때의 현기증을 느끼며
난 이국의 감미로운 음악에 탐닉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너무도 불행했고
난 너무도 어벙했고
난 무지무지 외로웠다
그래서 결심했지, 가능하면 오래오래 살아야지 하고
나이들어서 엄청나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말이야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성혜경譯 <보이지 않는 배달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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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청춘을 빼앗긴 일본 여성의 상실감을 그린 이 시는 戰後詩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전쟁을 지나온 시인, 그녀에게 젊음이 용솟음치고 뭔가 해보려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려 할때, 몸은 경쾌하고 마음은 들뜰 때, 전쟁은 그 젊음을 삼켜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할아버지가 되서도 작품을 남겼던 화가 루오처럼 오래 살아남아 뭔가 값진 것을 남기겠다고.
개인의 운명이 공동체의 운명과 불화하였다기 보다 공동체의 운명에 개인의 운명이 저당잡힌 꼴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 '우리나라'는 단순히 전쟁을 한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일으키고 다른 나라를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고 고문했다. 그 국가라는 괴물이 한 짓을 개인에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나 동 시대를 살았던 똑 같은 젊은 피해자의 운명은 무어라 말해야 할까. 점령군의 음악을 들으며 겨우 버틴 젊음이 국가라는 욕망 아래 개인이 생명의 활기마저 숨죽여야 했던 시대를 지나왔다. 같은 공동체 같은 운명이었던 젊음은 그래서 공감했을 것이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시를 읽으면 한 개인의 씁쓸한 운명에 공감도 가지만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시대에 가해자 국가의 한 개인이 아닌 피해자 국가의 한 개인으로 바라보아도 아픈데, 조선반도의 젊은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말해 무엇하랴. 참혹이라 생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시를 온전히 읽으려면 시인이 일본 여성이란 사실을 잊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 피트 시거의 반전 노래로도 불리었던 이바라기 노리코의 이 시는 인류애의 측면에서 모든 배경을 던져두고 읽어야 의미가 울린다. _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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