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혼잣말 (181)
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서울의 우울4 김승희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없으면 자살로 본다 법의 말씀이다 어느 자살도 깊이 들여다보면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너무 많다 심지어는 내가 죽인 사람도 아주 많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밧줄을 목에 걸었다 할지라도 모든 죽음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자살..
드라이아이스 송승환 다시 내린 눈으로 바퀴 자국이 지워졌다 찌그러진 자동차가 견인되었다 앰뷸런스가 아득히 멀어져갔다 눈물 없이 울던 그녀의 뒷모습 새벽 안개와 함께 지상에서 걷혔다 불을 품은 뜨거운 얼음에 데인 적이 있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중에 녹아 사라진다 하늘 한..
오빈리 일기 / 박용하 일기 형식을 빌어 쓴 박용하 시인의 첫번 째 산문집이다. 그의 데뷔가 이른 점을 감안하면 뒤늦은 산문집 발행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는 시인의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던 시인에게 일기형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것이 난중일기였나보다. 그..
사평역(沙平驛) 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이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
시의 소재와 문학적 삶 한 승 태 다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백석’이라는 이북에 살았던(물론 이북에만 산건 아닙니다.)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이것은 매우 주요한 시적 소재인데요. 시라는 것이 어떤 소재를 쓰던 관계는 없지만, 대개가 자신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습니다..
對酒二首 白居易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癡人 술을 앞에 두고 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워 무엇 하리 부싯돌 번쩍이듯 찰나를 사는 몸 부유하든 가난하든 또한 즐길 일 어리석어라! 크게 웃지 않는 자여 역: 한승태 사람과 어울려 살면 반드시 각각..
봄 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세르게이 예세닌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고요함과 행복이 있는 그 나라로, 어쩌면 나도 곧 길을 떠날는지 모른다. 덧없는 세간살이를 치워야 한다. 그리운 자작나무 숲이여! 너 대지여! 그리고 너 모래벌판이여! 이러한 떠나가는 동포들의 무리 앞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