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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빈리 일기_박용하 본문
오빈리 일기 / 박용하
일기 형식을 빌어 쓴 박용하 시인의 첫번 째 산문집이다. 그의 데뷔가 이른 점을 감안하면 뒤늦은 산문집 발행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는 시인의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던 시인에게 일기형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것이 난중일기였나보다. 그는 여러 번 사석에서 난중일기의 간결함과 단오함과 치밀함에 감탄하곤 하였다.
마리아 파란두리의 <으슥한 해변에서> / 마리아 델 마르보네의 <perigiali>을 들으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1. 시인이 생각하는 일기란?
24p : 일기가 사적인 글이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일기처럼 정치적인 글도 없다. 모든 글은 정치적이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다. 정치적이지 않고 사회적이지 않은 글쓰기란 게 가능할까.
25p 카뮈의 여행일기 : 내면적인 것은 아무것도 쓰지 말고, 그날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말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41p 난중일기 : 마흔 셋(2005)에 난중일기를 처음 읽었다. 충격이었다. 그 몇 대목
을미년(1595) 8월 27일(정묘) 맑았다. 군사 5,480명에게 음식을 먹였다...
병신년(1596) 9월19일(임자) 비바람이 크게 쳤다. 오늘 아침에 광주목사가 와서 아침을 같이 먹었다. [먼저 술이 시작되어 밥도 먹기 전에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술에 취했다]
정유년(1597) 12월12일(무진) 맑았다. 13일 이따금 눈이 왔다. 14일. 맑았다. 15일 맑았다. 등등
2. 시인은 왜 오빈리라는 시골로 갔을까?
26p : ...화병이 뭔지 알게 되었다....밥하고 빨래하고 그렇게 십년이 갔다. 그럼에도 불량주부 아빠 밑에서 아이는 씩씩하게 자라났다.
두 번의 이사와 시골생활이란
--> 광탄 : 원주민과 외지인이 기름처럼 섞여 있는 곳으로 인심이 고약했고 지독히 배타적이고 함부로 감섭하려 들었다.
--> 오빈리 6p : 너 같은 한량 하나 못 받아주랴는 표정 / 환갑 넘긴 어르신이 먼저 손 내밀며 통성명 하는 곳/ 묵정밭은 선선히 내어주기도 하는 곳 그래서 풀 뽑고, 농사짓는 재미를 선사한 곳
p200 : 농사가 주는 생명의 신비와 수확과 나눔의 즐거움
농사로 화를 삭히며 보내는 일상과 동네의 인심
최낙현 어른 : 박 선생 마누라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사시게. / p96 등
3. 시인소개 : 전업주부 겸 시인으로 딸 양육
청개구리 한 마리 / 거미 : 하지만 시가 써지지 않는 날들이 늘어간다.
p212; 나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끝없이 동요하는 내면의 소유자다.
4. 시인의 분노와 우울의 정체가 무엇일까?
가장 행복해했을 것 같은 날은 언제였을까 47p / 92p /81p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왔다 갔다 한다.
분노로 농촌의 농로를 들고 뛰는 시인과 산책하며 생명을 관찰하는 즐거움
자신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확대하기도 하고 사회문제를 자신의 내부의 문제로 수렴하기도 한다.
그에게 화와 우울의 정체는 ==> 보들레르의 정체모를 원수/김수영의 내부의 적 같은 개념이 아닐까!
우울과 분노의 대응책 : 술
p112 : 5월 20일 하루 종일 피가 끓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해 엉망진창인 하루였다 ==> 이런 날이면 도시의 친구들을 찾아가 술을 마시거나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p170 : 딸의 말 - "아빠 술 좀 줄이세요. 화가 난다고 울적하다고 자꾸 술 드시면 어떡해요. 제가 기분 안 좋다고 게임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p80 : 시를 쓰려 했으나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저녁에 딸아이가 한소리 했다. "아빠는 집귀신 같애요."
시 낭독
p112 : 미발표 신작
원수와 한방을 쓰면서
내가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잇을 것 같지만
내가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나다
내가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건만
하물며 내가 너를 내 맘대로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끝끝내 내려놓을 수 없는 게 나일 것이다
나는 나로 가득하고 너는 너로 가득하다
그러니 대체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인생이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살인이 그러하듯 자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나한테 지는 것조차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사람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밀라 했던 사람은
나를 내 맘대로 내려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거나
그 역시 죽을 때까지 나를 내려놓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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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할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첫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둘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첫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둘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첫째 손자가 부려먹었다
둘째 손녀가 부려먹었다
밥 번다는 이유로
평생 싼 값에 부려먹었다
회초리 같이 가느다란 사람,
암에 걸려 수술대 위에 걸려 있다
5. 그는 왜 글을 쓸까
127p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연설<아버지의 여행가방> 인용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저는 쓰고 싶어서 씁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화가 나기 때문에 씁니다. 방에 하루 종일 앉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씁니다. ...등등
p24. :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시가 내 몸을 통해 써지지 않고 있다. 이 지리멸렬함. 이 동어반복, 이 새로울 것 없는 인생, 전부, 전부, 전부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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