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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시의 소재와 문학적 삶

바람분교장 2016. 9. 8. 11:44

시의 소재와 문학적 삶

 

한 승 태

 

다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백석이라는 이북에 살았던(물론 이북에만 산건 아닙니다.)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이것은 매우 주요한 시적 소재인데요. 시라는 것이 어떤 소재를 쓰던 관계는 없지만, 대개가 자신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알겁니다. 우리가 시를 쓰던, 산문을 쓰던 어떤 소재를 접하게 되는데, 가장 쓰기 쉽고 자신 있는 것이 자신의 얘기지요. 그런데 자신의 얘기를 쓸 때는 읽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가 혹은 문학이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나 암호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즉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이건 내 얘기야! 라고 할 수 있어야 공감과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인물 유형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보았던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1930년대가 아니니까 우리가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지금은 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시면 여러분의 문학적 상상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1)쇠메든 도적 2)예순이 넘은 가즈랑집 할머니, 막써레기 피우는 무당, 구신의 딸 3)곰이 돌보는 산골 아이 4)진할머니 진할아버지 5)얼굴에 별자국이 솜솜난 곰보 말수 6)하루에 베 한 필 짠다는 신리 고모 7)신리 고모의 딸 李女, 작은 이녀 8)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모 9)토산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10)육십리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떄가 많은 큰골 고모 11)큰골 고모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12)배나무접을 잘하는, 술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쑥 뽑아놓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13)삼춘엄매(숙모), 사촌누이, 사촌 동생들 14)밤늦도록 유희하고 노는 친척 아이들 15)이른 아침에 부엌에서 함께 의좋게 일하는 시누이 동세 16)한번 찾아와선 갈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 17)술을 밥보다 좋아하는 삼춘 18)귀먹어리 할아버지 19)재당 20)초시 21)문장 늙은이 22)더부살이 아이 23)새사위, 갓사둔 24)나그네 25)주인 26)손자 27)붓장사 28)땜쟁이 (29)어려서부터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자라나 불쌍하게도 몽둥발이가 된 할아버지 30)먼 타관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배 31)산비탈 외딴 집에 사는 모자 32)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 소도적놈 33)닭보는 할미 34)밤오줌 마려워 잠깬 아이 35)시집갈 처녀, 막내 고모 36)마을의 소문을 퍼뜨리는 일가집 할머니 37)오리치를 놓으러 간 아배 38)물코를 흘리며 흙담벽에 붙어 서서 물감자를 먹는 아이들 39)논두렁에서 개구리 뒷다리를 구어먹는 아이들 40)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들어진 주막집 아들 아이 범이 41)말을 몰고 이 장 저 장 옮겨다니는 장꾼들 42)첫아들을 낳은 나이 어린 산부 43)컴컴한 부엌에서 미역국을 끓이는 늙은 홀아비 44)새벽에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물지게꾼 45)도야지를 몰고 시장으로 가는 사람 46)떠돌아 다니는 순례중(객승) 47)벌판의 간이역에서 경편철도의 열차를 막 내려서는 젊은 새악시 47)달밤에 목매 죽은 수절 과부 48)거적장사 49)남편은 행방불명, 딸은 병사하고 혼자 남아 비구니가 되어버린 여인 50)방안으로 들어온 거미새끼를 바깥에 버리고 불쌍한 생각에 젖는 시인 51)집터 치고 달구질하고 달밤에 노루고기를 구어 먹는 산골사람들 52)산나물캐는 수양산의 늙은 노장스님 53)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천희 54)어스름 저녁 국수당 돌각담 수무나무 가지에 여귀의 탱을 걸고 나물매 갖추고 비난수를 하는 새악시들 55)벌개늪 옆에서 바리깨를 두드리는 동네사람들 56)방뇨를 하는 잠없는 노친네들 57)물기에 젖은 왕구새 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 58)얼굴이 핼쓱한 병든 처녀 59)메기수염을 한 청배장수 늙은이 60)머루넝쿨 속에서 키질하는 산골 여인 62)너무도 가난하여 열다섯 어린 나이에 늙은 말꾼에게 시집간 정문집 가난이 63)물에 빠져 죽은 건너마을 사람 64)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애기무당 65)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비에 젖어 약물을 받으러 오는 두메 아이 66)앓는 아비 67)무당의 딸 68)어장 주인 69)일본말에 능한 황화장사 영감 70)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 71)더꺼머리 총각 72)주막집 앞에서 품바타령 부르는 문둥이 74)당홍치마 노란 치마입은 새악시 75)시골마당에 볏짚같이 얼굴이 누우런 사람들 76)노루새끼를 팔러 장에 나온 산골 사람 77)자박수염난 공양주 78)저고리에 남색 깃동을 단 돌능와집의 안주인 79)산골여인숙에서 목침에 새까만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 80)석가여래같은 얼굴을 하고 관공(관우)의 수염을 드리운 북관의 늙은 의원 81)북관의 계집 82)봄날을 즐기려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 83)맑고 가난한 친구 84)빚을 얻으러 온 사람 85)허리도리가 굵어가는 중년여인 86)꼴뚜기 회를 나누어 먹는 뱃사람들 87)여름밤 멍석자리에 나와 앉아 바람을 쐬는 사람들 88)밤참국수를 받으러 간 아배 89)플렛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귀이리차를 마시는 여행객들 90)옹기장사 91)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 92)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꿀꺽 삼키는 사람들 93)닭의 똥을 먹을 것으로 알고 주워 먹는 산골 아이 94)목욕탕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꽥꽥 지르는 중국사람 95)마음씨 좋은 중국인 지주 노왕 96)적막강산을 느끼는 작중화자 97)아내와 집을 잃고 부모형제마저 모두 이별한 외로운 사람 98)소수림왕 99)광개토대왕 100)일본인 주재소장 101)일본인 주재소장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가 손등이 갈라터진, 삼촌을 찾아가는 어린 소녀 102)제사를 지내는 늙은 제관 103)수박씨와 호박씨를 익숙하게 까먹는 중국인들 104)시인의 친구 정현웅, 허준 105)도스토옙스키, 죠이쓰 106)촌에서 온 아이 몇몇 역사적 인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농민들이거나 중심에서 비켜난 주변적 인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남에게 고통과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호소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적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아마도 처음 보는 낱말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분 주위에는 실로 다양한 작업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나고, 또한 내가 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지요. 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만큼은 아니라도 조금쯤은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도 저도 행복할 것이라 믿습니다. 문학을 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 행복하기는 어렵겠지요. 위에 106명의 인물유형을 분류한 사람은 이동순 시인입니다. 그분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선전집을 내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