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181)
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ch. 보들레르 거리는 내 주위에서 귀가 멍멍하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갖춘 상복, 장중한 고통에 싸여, 후리후리하고 날씬한 여인이 지나갔다, 화사한 한 쪽 손으로 꽃무늬 주름장식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어 흔들며, 날렵하고 의젓하게, 조각 같은 그 다리로, 나는 마셨..
벼룩 벼룩도, 친구도, 애인마저도, 우릴 사랑하는 것들은 어찌 그리 잔인한가! 우리네 모든 피들은 그들을 위해 흐르지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행하지 -----------------------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한꺼번에 고통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그 고통을 나눠받는다.(황현산) 황현산 선..
시시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박세현 시인, 그의 시집 <아무것도 아닌 남자>는 그의 삶과 시 사이에 긴장을 만든다. 보통은 시 내부의 행과 행이거나 연과 연이거나 제목과 내용 간에 긴장이 발생하기 마련이데, 이 시집은 시인의 삶과 시집 혹은 시라..
율가(栗家)/이소회 갓 삶은 뜨끈한 밤을 큰 칼로 딱, 갈랐을 때 거기 내가 누워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레가 처음 들어간 문, 언제나 처음은 쉽게 열리는 작은 씨방 작은 알 연한 꿈처럼 함께 자랐네 통통하니 쭈글거리며 게을러지도록 얼마나 부지런히 밥과 집을 닮아갔는지 참 ..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 / 윤영애 / 문학과 지성사 28 모든 위대한 시인은 자연적으로 숙명적으로 비평가가 된다. 나는 본능에만 의존하는 시인을 측은하게 여긴다. 나는 그들을 불완전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인을 최상의 비평가라고 생각한다. <바그너에 관한 글 중에서> 29..
공범 이덕규 집 한 채가 전소했다 방화였다고 한다 현장 검증에서 범인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여자네 집 현관 귀퉁이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십년을 기다리다 까맣게 타죽은 소화기를 공범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시인동네 10월호 중에서 이덕규 <공범> 전문 -------------------------..
『파리의 우울』은 보들레르의 혁명적 ‘산문시’ 51편이 실린 시집이다. 자유분방했던 시인 보들레르, 그는 운문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 당시 미풍양속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기도 했다. 여섯 편의 시가 강제로 삭제되었고, 시인은 크게 낙심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삭제당한 여섯 편의 시 대신 서른다섯 편의 시를 추가, 『악의 꽃』을 다시 발표한다. 그 즈음 ‘산문시집’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되기도 한다. 보들레르의 산문시는 ‘시적인 산문’이 아니다. 『파리의 우울』에서 (중략) 대부분의 산문시는 시적 선율이나 박자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씌었다. 시의 전개에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수사법에서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고라니 최계선 식물도 사람 발자국 소리 알아듣고 알아들은 만큼 큰단다, 씨 뿌렸다 될 일 아니고 밭에 자주 다녀야 된다는 어머님 말씀인데, 오리걸음 호미질 끝내고 뒤돌아보면 벌써 밭고랑 뒤덮으며 쫓아오는 풀들, 온 사방은 풀들로 가득한데, 얘네들은 우리가 먹을려고 심어놓은 잎..
안국역 민 왕기 두 손을 혀처럼 내밀고 얼어버린 검은 조개 한 마리를 만났다 무릎이 찰 것 같다 은유는 모독 같아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고 다시 쓴다 동전을 떨구자 그가 고개를 묻고 고맙다고 한다 고맙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손이 그룻처럼 얼어있을 것 같다 비유는 치욕 같아서 사람의 손이 차다고 다시 쓴다 슬픔은 오지 않는다 슬픔은 은유도 비유도 없이 바닥을 울고 있으므로 행려가 여행이 되거나, 부랑이 방랑이 되고 연민이 사랑이 되지 않는 한 기적은 이적이 되지 않고 무릎 꿇은 사람은 걷지 않는다 그가 고개를 묻고 고맙다고 한다 고맙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 민왕기 시집 _ 중에서 그의 시는 말의 힘에 기댄다. 아니 뉘앙스의 꿈을 실천한다. 간절, 간곡, 애틋, 은밀, 아늑 같은 형용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