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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안국역_민왕기

바람분교장 2017. 7. 30. 19:47

안국역

 

                민 왕기

 

 

두 손을 혀처럼 내밀고 얼어버린 검은 조개 한 마리를 만났다

 

무릎이 찰 것 같다

 

은유는 모독 같아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고 다시 쓴다

 

동전을 떨구자 그가 고개를 묻고 고맙다고 한다

고맙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손이 그룻처럼 얼어있을 것 같다

비유는 치욕 같아서 사람의 손이 차다고 다시 쓴다

 

슬픔은 오지 않는다 슬픔은 은유도 비유도 없이 바닥을 울고 있으므로

 

행려가 여행이 되거나, 부랑이 방랑이 되고 연민이 사랑이 되지 않는 한

기적은 이적이 되지 않고 무릎 꿇은 사람은 걷지 않는다

 

그가 고개를 묻고 고맙다고 한다

고맙다고 두 번이나 말한다

 

 

민왕기 시집 _ <아늑> 중에서

 

 

그의 시는 말의 힘에 기댄다아니 뉘앙스의 꿈을 실천한다. 간절, 간곡, 애틋, 은밀, 아늑 같은 형용사를 명사화 한 시들이 그렇다. 젊은 시인임에도 그의 시에서 곡진함과 맬랑꼴리가 묻어난다. 사회부 기자의 발버둥인가. 그의 시를 읽는 내내 뭔가 내 손목과 눈길을 그러잡는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넘어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한다. 시가 어렵거나 난해해서가 아니다. 추억이라 해야 하나, 낭만이라 해야 하나, 그가 기대 언덕을 나도 가져보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집을 받은 지 보름이 넘어 어느 날 난 밤늦게 그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다. 바로 시 '안국역'에 이르러서였다. 한 번 쉼표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술을 먹었을 때와 안 먹었을 때로 나뉜다. 다행히 술을 먹지 않고 있었다. 난 그에게 '안국역'에서 오래 머물고 있다고 했다.

 '安國驛'은 평안한 나라의 역이라는 이름과 달리 현실은 차가운 돌바닥이라는 아이러니에 걸려 있다. 그의 시의 출발을 난 이곳에서 본다. 시집의 시들은 낭만적 노스탤지어를 지향한다. 헬조선이라는 멸시의 현실과 사회부 기자 사이에 그의 실존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꿈을 실현하는 방법은 시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이 시에서는 그가 기댄 말의 몽롱을 벗는다.

은유도 비유도 없이 맨바닥을 울고 있다. 울음의 인간을 듣는다. 돌바닥 위에 무릎 꿇은 사람에게는 은유가 모독 이라는 말 속에 그가 있다. 맬랑꼴리와 노스탤지어로 가릴 수 없음을 그는 안다. 백석의 수라에서 보여준 여린 사람의 눈물을 그도 여기서 은유의 껍질을 벗고 보여준다. 시인이 현실에서 하는 말은 거칠지만,  하룻밤이 지나면 껍질 속의 여린 살을 보여준다. 시는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하니 고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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