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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보들레르

바람분교장 2017. 10. 28. 15:30

『파리의 우울』은 보들레르의 혁명적 ‘산문시’ 51편이 실린 시집이다. 자유분방했던 시인 보들레르, 그는 운문시집 『악의 꽃』을 발표한 당시 미풍양속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기도 했다. 여섯 편의 시가 강제로 삭제되었고, 시인은 크게 낙심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삭제당한 여섯 편의 시 대신 서른다섯 편의 시를 추가, 『악의 꽃』을 다시 발표한다. 그 즈음 ‘산문시집’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되기도 한다.

 

보들레르의 산문시는 ‘시적인 산문’이 아니다. 『파리의 우울』에서 (중략) 대부분의 산문시는 시적 선율이나 박자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씌었다. 시의 전개에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수사법에서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보들레르의 산문시는 산문으로 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산문으로 기술한 것이다.(280쪽)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번역한 『파리의 우울』에서 황현산 선생은 각 시를 충실하게 주해해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시로는 알 수 없는 보들레르와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황현산 선생의 글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읽을거리다. 황현산 선생과 함께하는 보들레르 낭독의 밤이 지난 9월 22일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렸다. 서평가 금정연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황현산 선생의 낭독으로 보들레르를 감상하며 보들레르의 시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회를 맡은 금정연은 떨리는 감정을 전하며 “보들레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는 황현산 선생님의 강연을 함께 듣게 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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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예술론


큰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황현산 선생은 참석자들에게 “저한테 무슨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들레르의 인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웃음을 건넸다. 낭독의 밤인 만큼 보들레르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행사를 열었는데, 첫 번째 낭독 시는 「예술가의 고해기도」였다.

 

하늘과 바다의 광막함 속에 눈길을 담근다는 그 크나큰 환희! 고독, 정적, 창공의 비할 데 없는 순결함! 그 약소함과 고립으로 내 치유할 수 없는 삶을 닮아, 수평선에서 떨고 있는 조그만 돛, 물결의 단조로운 멜로디,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하여 생각한다, 아니 그것들을 통하여 내가 생각한다(몽상의 강대함 속에서, 자아는 이내 소멸해버리고 말지 않는가!). 그것들이 생각한다, 나는 말하는데, 그러나 궤변도, 삼단 논법도, 연역법도 없이, 음악적으로 회화적으로 생각한다. (13쪽, 「예술가의 고해기도」 일부)

 

이 시가 보들레르의 예술론에 관한 대표적인 시라고 설명한 황현산 선생은 “예술가에게 잘못이 있고, 그 잘못을 고백한다고 하면 그 잘못이란 건 결국은 자기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것일 것”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는 자연 전체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결코 실현시킬 수 없는 무한에 관한 상념이다.

 

“보들레르가 (상념)하는 방식은 명상이 아닙니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그 무한을 느끼고 있어요. 가을날이 가지고 있는 그 무한이 어떻게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가, 바다를 볼 때 내 육체가 어떻게 떨리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결국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명상하던 것을 육체적 감각으로 느끼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내는 것이 보들레르에게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낭독한 시는 순간과 영원에 대한 아름다운 시 「시계」였다.

 

나로 말하자면, 몸을 굽혀 아리따운 펠린을, 이름도 그리 잘 지어진 그녀를, 저와 동성(同性)의 명예인 동시에 내 마음의 자랑이며 내 정신의 향기인 그녀를 들여다보면, 밤이건 낮이건, 가득한 빛 속에서건, 어둠침침한 그늘 속에서건, 사랑스러운 그 눈 깊은 곳에서, 나는 언제나 또렷하게 시간을, 언제나 똑같은 시간을, 분과 초의 구분이 없이, 허공처럼 드넓고 장엄하고 거대한 시간 하나를-시계 위에 표시되지 않는, 그러나 한숨처럼 가볍고, 눈 한 번 깜빡이듯 재빠른 부동의 시간을 본다.(45쪽, 「시계」 일부)

 

보들레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인생, 시간의 덧없음을 그러나 보들레르는 말하지 않는다. 보들레르의 시간은 농경사회의 시간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간에 대해 얘기할 때 물처럼 흐른다고 표현하는데요. 보들레르한테 시간은 물 흐르듯, 바람 불어오듯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1분, 1초 분할된 시간, 시간 그 자체가 물체화 되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는, 이런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압박이 사라지면 마음이 편안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압박이 사라지면 권태 속에 들어가게 되죠. 바로 이게 산업사회의 시간,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입니다.”

 

완전하게 평화로운 어떤 시간에의 추구, 순간이면서도 동시에 영원인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보들레르. 「시계」는 바로 그런 시간을 노래하고 있다.

 

네 머리칼은 돛과 돛대 가득한 꿈 하나를 고이 품고 있어, 네 머리칼은 거대한 바다를 품고 있어, 그 계절풍이 아름다운 풍토로 나를 실어가지, 그 나라의 하늘은 한결 푸르고 한결 그윽하고, 그 나라의 대기는 과일과 나뭇잎으로, 사람들의 살갗으로 향기롭지.(47쪽, 「머리타래 속의 지구 반쪽」 일부)

 

세 번째로 낭독한 시는 「머리타래 속의 지구 반쪽」이었다. 보들레르의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시였다. 시는 열대의 내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칼 냄새였음을 알게 한다. “보들레르한테 여자가 여러 명 있었는데, 잔 뒤발이라고 하는 혼혈이었고, 배우기도 했던 여인을 연상하게 하는 시입니다. 잔 뒤발은 굉장히 육감적인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보들레르가 그린 그림을 봐도 육감적인 모습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황현산 선생은 어떤 개념과 사상, 다른 세계를 육체적 감각을 표현하는 말로 번안되어서 나오는 이것을 상징주의라고 설명했다.

 

다음 낭독한 시는 잘 알려진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였다.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새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99쪽, 「취하라」 일부)

 

“보들레르는 원래 마약을 했었죠. 술에 관해서도 여러 편의 시를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마약이나 술이 우리의 정신과 감각을 고양시켜주는 일을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형편없는 존재죠. 육체라고 하는 지극히 허약한 집안에 갇혀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제한된 육체, 제한된 물질적 수단을 가지고 어떤 무한에 관해 생각하고, 영원에 관해 생각함으로써 자기 정신을 영원하고 무한한 것으로 만들고,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요. 바로 그 수단들이 마약이고, 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낭독한 「창문들」은 황현산 선생이 보들레르의 산문시 중 가장 좋아하는 세 편 중 한 편으로 꼽은 시다.

(다른 두 편은 「비장한 죽음」와 「가난뱅이들을 때려눕히자!」라고 후에 밝히기도 했다)

 

지붕들의 물결 저편에서, 나는, 벌써 주름살이 지고 가난하고, 항상 무엇엔가 엎드려 있는,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는 중년 여인을 본다. 그 얼굴을 가지고, 그 옷을 가지고, 그 몸짓을 가지고, 거의 아무것도 없이, 나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아니 차라리 그녀의 전설을 꾸며내고는, 때때로 그것을 내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눈물을 흘린다.(102쪽, 「창문들」 일부)

 

창을 통해 밖을 보는 사람보다 밖에서 닫힌 창을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보들레르. 창문 뒤,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온갖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크고 더 풍요롭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는 황현산 선생은 이어 “이것은 바깥의, 사회적인 삶과 한 예술가의 내적인, 창조적인 삶을 대비시켜 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밖으로 우리가 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저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내면이 중요하다면 왜 밖에 있는 여자를 핑계로 삼아야 하느냐 질문할 수 있어요. 결국은 현실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고, 꿈꾸고, 계획하건 결국은 그것이 현실과 접합점을 가질 때만 중요하다, 이런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상징주의를 말할 때 상징으로 상징되는 세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마지막 순서로 낭독한 「Any Where Out of the World(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였다.

 

이 삶은 하나의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사람은 난로 앞에서 신음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저 사람은 창 옆으로 가면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저곳에 가면 언제나 편안할 것 같기에, 이 이주의 문제는 내가 끊임없이 내 혼과 토론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128쪽, 「Any Where Out of the World(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일부)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해요.(웃음) 어디든 괜찮다, 대한민국만 아니라면, 이라고 하죠.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예요. 19세기 보들레르가 이렇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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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금정연: 요즘 근황이 어떠신가요?


황현산: 수술을 받았는데, 요즘은 많이 회복됐습니다. 작년 11월에 트위터를 시작했는데요. 아마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일을(웃음)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직 1년이 안 됐는데 그동안 몇 차례 파동이 있었어요. 그럭저럭 슬기롭게 이겨냈습니다.(웃음) 트위터 활동은 당분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금정연: 산문시집이라는 장르가 낯설게 느껴지는데, 산문시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현산: 산문시는 산문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운율이 없습니다. 산문시가 아름답고 전체가 시적인 말로 되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오늘 낭독한 시들은 대체적으로 시적 산문이기도 합니다만, 산문시집에 들어있는 상당수의 시는 상당히 거친 산문입니다. 원래 시라고 하는 것은 연이 있고, 라임이 있고, 박자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라임이나 박자, 이런 것은 시적인 것을 야기 시켜주기 위한 것들이죠.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시적인가, 겠죠. 운율과 같은 것들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달에 해당하는 것이 시적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시적인 것을 보들레르는 세 가지 특성을 들어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감정의 서정적인 파동, 꿈의 몽상, 그리고 의식의 소스라침, 이렇게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들로 시적인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적인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시가 가지는 형식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산문시가 착안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정연: 번역하시기 가장 힘들었던 시, 번역이 가장 즐거웠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황현산: 실은 다 힘듭니다.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비장한 죽음」이었습니다. 이 작품도 보들레르의 예술론에 해당합니다. 예술이라 하는 것은 어떤 분석적 지성으로 만들어지느냐, 몰입하는 정신으로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요. 보들레르가 쓰고 있는 문장 형식들이 매우 까다롭고 우리말로 전달하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끝나기 때문에 번역한 다음에 마음도 아프고요.(웃음) 가장 즐거웠던 작품이라고 한다면 「착한 개들」이라고 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보들레르의 작품과 다르다고 느껴져요. 능청도 떨고, 너스레도 떨고요. 평소에 있던 깐깐한 보들레르의 태도가 누그러져 있습니다. 작품을 번역하고 있으면 번역해놓은 우리말도 흥겨워요. ‘나도 번역 잘하네’(웃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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