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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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낭화
한승태
유월 한낮 어린 딸을 데리고
옛 마을의 山寺로 산책 간다
경내 스피커에선 목탁소리 대신
녹음한 부처 말씀만 또랑또랑 흘러나오고
사천왕 대신
개 두 마리 배 내놓고 낮잠 잔다
햇살은 화엄경 마냥 저리 넓어서
설법 위로 떠도는 자벌레가
무량한 햇살의 반죽을 펴놓고 주무른다
테이프가 멎고 뒤집히는 순간,
거기서 일체가 지겨운 듯 걸어 나와
귀가 들은 세상을 눈이 토해놓는다
저 무료한 세상의 한 끝을 위하여
층층이 내려앉은 계단 틈에 홀로
아주 오랜 종소리 절로 깊어진다
현대문학200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