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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시 발표작

결혼식장에서

바람분교장 2008. 7. 25. 15:20
          결혼식장에서  

                    

                                     한승태



가을은 더욱 분주하게 나뭇잎을 떨구고

나는 기억도 희미한, 길 따라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

친구가 꼭 잡은 나무 둥지 아래로

한 광주리의 단풍잎이 오래된 안부처럼 떨어진다


벌써 애가 둘이라는데, 새삼스레

불쑥 은행잎 같은 엽서를 내밀었을까

청첩장에는 국수가락처럼 풀리는 오후가

옛 마을의 지도를 그리고 지금은 지워진

아버지의 기억 끝까지 빠지는 무논과

서서 마른 옥수숫대가 햇살을 부비고 있다


한 쪽 뺨이 얼얼했다


땅 있던 이들은 있는 대로

없던 이들은 없는 대로 흩어져

다섯 해만에 불쑥 손 내미는 마을 옛 이름

그랬다, 개발지구 말뚝이 박히고 나서도

오랫동안 허깨비처럼 전신주에 기댄 석양도

식어버린 잔치음식처럼 더부룩하고 허한

빈손을 감추고 서로가 낯설은 척 어설픈

햇살이 구정물처럼 버려지고 있었다

 

 

 

 

현대문학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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