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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을 /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장 2017. 12. 6. 15:41

다시 겨울이 오고 저 남쪽 나라에서는 지나는 새들이 병원균을 퍼트리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오지. 2011년 겨울 난 인간의 빙하기가 다시 오는 줄 알았다. 죽음이 벌판을 바람처럼 쏘다녔다. 숨 쉬기도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나와 마을



한파와 소독약으로 온통 회칠한 골짜기 마을 
조류독감에 구제역이 창궐하다 눈 그치고 
마침내 어린 젖먹이를 위한 조등도 켜졌다
하루치 걸음은 지워져 짧은 日月이 되고


비탈에 선 나무들은 하늘로 피를 토한다


짓다 만 까치집도 불탄다 영문 모른 채 
체온을 잃은 새떼는 급히 날아오르고 
숲정이엔 껴묻거리로 순장되는 부사리 영각 
어깨까지 잘린 가로수는 돌아서 입술을 깨문다


저 병풍 속 다리를 건너 자식 잃은 이국의 며느리야 
배신당한 너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겠다
까치도 까마귀도 네가 가는 곳이 궁금하겠다 
남은 인간도 영각도 저주도 묻어버린 곳 
돌아보니 골짜기가 오롯이 명당이다

살처분한 하늘에는 흙눈이 쳐들어오고 
대지는 온통 어둠이 흡혈하는 무덤이다
日月은 방심한 급소만 베고 지나난다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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