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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깔나무 숨 속 한승태 오줌이 마려웠다 451번 지방도와 31번 국도가 만나는 아홉사리재 인적 없는 국유임도를 따라 무작정 들어선 나무들의 숨 속 키 작은 떡갈나무와 개암나무 길섶으로 드문드문 팔은 움츠렸지만 발끝은 부드럽고 아스라이 소로는 이어졌다 수직의 나무 끝에 소곤거리는 수북이 쌓..
열차에서 한승태 군용열차 뒤로 풍경이 달린다 기차 속의 나는 풍경처럼 너를 생각한다 너무 쉽게 해버린 말을 강촌 출렁다리 아래 물결을 푸른 군복을 심지어는 손톱이 자라고 때가 낀 것까지도 의문이 간다 왜 일까? 너와 이야길 하며 왠지 불안하고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이야길 피하며 하릴없이 웃..
뱀을 기다리며 -청평사 공주塔에 기대어 한승태 이렇게 낙담하는 마음이 많으니 한 때 사랑도 참 많았나보다 이름을 淸平이라 하고 석탑을 쌓은들 호랑이와 이리가 주인자리를 내놓을 수야 있나 두려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끝내 사랑한다고 폭포는 떨어지는데 공주는 아직 저문 능선에 귀 기울이고 ..
高士觀水圖 -조선시대, 강희안 한승태 나는 숲으로 간다 몇 번 멧부리와 만나고 손목과 발목에 와 감기는 풀잎 속으로 간다 나무나 풀들은 무심히 귀를 열어놓고 나의 발걸음을 받아 적는다 바람소리가 가깝다 달과 별이 써늘하다 숲이 뭐라고 뭐라고 속삭이는 거미줄 내 심장의 급한 여울을 걸러낸다..
오래된 말씀 같은 -멕시코 만류는 쿠바를 지나 북쪽 그린란드에 이르러 다시 심해 해류로 흘러 적도까지 다시 오는데 이천 년이 걸린다. 한승태 흘러온다 저 가을 강물도 흐르고 하늘도 흘러 온다 내가 사는 내린천 상류 저 하늘을 흐르는 푸른 해류 예수의 울음이 막 터져 마구간의 지붕 틈으로 흐르..
신석기 뒤뜰2 한승태 구석기와 신석기가 한 페이지에 넘어 간다 늘 시험 앞에 줄 선 삶이 무딘 주먹도끼 갈다 마주친 눈이여 청동細紋鏡 속 떠나간 순이 같다 햇살만 조랑조랑 열린 산수유나무 아래, 자연법이 펼쳐 논 밥상 토기 든 여인네가 포르르 날아와 연신 고개 조아리며 기도한다 정화수였을까 ..
오후 한 시 한승태 강이 흐르고 어느새 工團에서 나온 사내가 서있고 야금야금 먹는 강변을 따라 점심이 흐른다 햇살은 강 건너 강아지풀 앞에 몸을 숙이고 배터진 소파를 삼키는 갈퀴덩굴로 더 집요하다 江岸에는 개구리와 배추흰나비와 개구리밥과 골풀 사마귀 달팽이 물방개 노란점나나니나 호리..
금낭화 한승태 유월 한낮 어린 딸을 데리고 옛 마을의 山寺로 산책 간다 경내 스피커에선 목탁소리 대신 녹음한 부처 말씀만 또랑또랑 흘러나오고 사천왕 대신 개 두 마리 배 내놓고 낮잠 잔다 햇살은 화엄경 마냥 저리 넓어서 설법 위로 떠도는 자벌레가 무량한 햇살의 반죽을 펴놓고 주무른다 테이..
결혼식장에서 한승태 가을은 더욱 분주하게 나뭇잎을 떨구고 나는 기억도 희미한, 길 따라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 친구가 꼭 잡은 나무 둥지 아래로 한 광주리의 단풍잎이 오래된 안부처럼 떨어진다 벌써 애가 둘이라는데, 새삼스레 불쑥 은행잎 같은 엽서를 내밀었을까 청첩장에는 국수가락처럼 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