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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뒤란 한승태 내 몸이 더 작아지는 오후 두 시다 발꿈치가 가렵고 마침내 측백나무 그림자가 끌고 가는, 푸른 그늘 위에 떠있다 은비늘 귀향의 돛도 없다 내린천을 거슬러 어둠이 환히 터지는 共鳴의 방 졸음이 축축하다 나 이미 햇살 깊어져 혼잣말이 무너져 내리고 銅鏡을 들여다보던 어린 넋, 퍼내고..
사랑은 언제나 -사진 이야기3 한승태 그것은 거대한 감옥 또는 사원일 터이다 넝쿨나무 두 그루가 좌우에서 자라 올라 서로를 비끄러매듯 남자와 여자는 키스를 하고 있다 흡사 그들은 두 나무의 뿌리 같다 벽돌이 촘촘히 쌓여진 건물은 한 쪽 면만을 보여 준다 그저 벽이다 그들이 앉은 돌 벤치는 차..
먼 가을 구릉 같은 한승태 먼 가을 구릉들이 봉곳하고 구름은 젖꼭지를 세운다 철새들의 길을 황사가 급히 지우고 내몽고의 모래무덤이 통째로 날아온다 온통 비 맞고 돌아온 유년 까맣게 마른 깻섶으로 아랫목을 덥히고 내 배꼽과 성기에서 배어나던 햇볕 졸은 냄새를 따라 낙숫물로 튀어 오르던 너..
바람분교 한승태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방동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 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는지 ..
무당개구리 한승태 우물이 하늘을 엿본다 골짜기 하나가 산새들과 너구리 오소리 다람쥐 누렁소나 고라니 휑한 눈 속 다섯 호 화전마을 속내를 일일이 간섭하던 그 무당 첫새벽 그 많던 소원은 다 그녀의 소관 온밤 내 컬컬한 별빛들의 성화로 맵게 반짝이다가 순이가 던진 바가지로 돌이끼에 튀어 오..
移葬 한승태 한 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한 자리에 모였다 상남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城南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 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대신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