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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올가미/박지웅

바람분교장 2020. 9. 10. 17:15

올가미

 

 

칠월 정원에 조롱박이 열리는 집

아궁이에 불을 넣은 주인이 올가미를 만든다

빈 그릇으로 톡톡 바닥을 두드려도

누렁이는 개집 안에 돌부처처럼 앉아 나오지 않았다

헛소리를 내던 주인은 금세 거칠어졌다

(범인이 인질극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집행은 수돗가에서 이루어졌다 처마에 밧줄을 걸자

뒷다리로 버티던 어떤 안간힘이 공중으로 들렸다

목메달린 개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래서 모가지를 딴다

수돗가에 달린 그 조롱박이 뒤척일 때마다

말간 하늘이 개밥그릇처럼 덜그럭거렸다

얼굴이 생긴 올가미 하나 질기게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눈길을 돌렸으나 다 보였다, 어쩌면 그날

내게 죽음을 보는 곁눈이 생겼는지 모른다

공중에서 서서 내려다보던 곁눈이 감기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성스럽게 털을 닦아내자

누렁이는 반들반들한 조롱박이 되었다

솥에서 나온 올가미는 얼굴을 잃고 시무룩하게 식어갔다

거기 목을 넣고 하늘 저쪽으로 흘러간 내 유년

생각난다, 우리는 꼬리 흔들며 여물어가고

조롱박 낯빛은 새파랗게 익어가던 그해 여름

 

박지웅_<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_문학동네 중에서


당신과 나는 올가미에 걸려 있다. 그해 여름과 모종의 합의 또는 묵인 이후 올가미는 내내 나와 당신의 목에 걸려 있다. 조롱박이 지켜보았고 조롱박은 스스로 올가미가 되었고, 그 올가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식욕의 꼬리를 흔들며 여름과 살고 있다. 동물과 식물의 이미지를 이토록 정교하게 교차하며 섞어놓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죽음을 보는 곁눈이 처연하다. 이런 게 시지. __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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