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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맨발 / 신승근

바람분교장 2020. 10. 17. 15:27

맨발

 

 

 

맨발로 논에 들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흙살이

솟구쳐 올랐다

뭉글뭉글 가슴이 울렁거린다

논바닥이 맨살을 열고

나를 온몸으로 받는다

아아, 발을 옮길수록

아득해지는 깊이

부르르 몸을 떨다가 마침내

절정에 가닿았다

맨발로 벌거벗은 진흙 속에

내 몸을 담갔다

드디어 내가

논두렁에 서서

논바닥의 마음을 훔쳤구나

 

 

신승근 시집 <나무의 목숨> 중에서


대지에 몸을 얻는다는 건 야릇하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올라오며 감싸안는 에로티즘에 몸이 열린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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