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전윤호 / 일신상의 비밀 본문
일신상의 비밀
전윤호
또 겨드랑이가 가렵다
침울한 과장의 눈치를 살피며
살살 긁어보지만
참을 수 없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숙연한 영업실적 보고회의
감원을 해야 한다고
사장은 딱딱거리는데
문제는 내 겨드랑이다
삐죽 날개가 돋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옷을 벗을 때마다
얼마나 조심하는지
아내도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개는 점점 자란다
조심해야 한다
내눈은 점점 위로
사무실 천장을 뚫고 옥상 위로
저 아래에서 날 부르는 날카로운 소리
하지만 난
맷돌에 눌려 죽은 아기처럼
자꾸 겨드랑이가 가렵다
전윤호 산문집_내겐 아내가 있다 중에서
압권이다. 이 시대 직장인의 소망이나 삶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다. 한 번만 읽으며 뭔 얘기인지 즉각적으로 이해가 되는 쉬운 시다. 쉽다고 그 내용이 별 거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노동자의 고통과 삶을 이토록 선명하고 쉽게 전설화 하다니. 날개는 아마도 사표쯤 될터인데, 사표를 던진다고 자유롭지 않다는 게 이 체제의 견고함이다. 하여간 질투가 난다. 이 시대의 아기장수들이여 날개를 펴자. 한승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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