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오래된 정원 본문
오래된 정원
전윤호
아버지 집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네
지금은 사라진 마당에
봄이면 향기가 먼저 오고
문을 열면 꽃이 피었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연탄불이 꺼진 방
조퇴하고 누워 있으면
나뭇가지가 이마를 짚어주었네
나와 자던 고양이가 올라가던 나무
그 앞에 서면 우주가 나를 반겼네
아버지 집에는 엄마가 없었네
라일락 나무가 내 방 앞을 지켰네
봄이면 아직도 열이 오르고
몸살을 앓는데
아버지 집은 내 안에 있어
기침할 때마다 라알락 향기가 올라온다네
전윤호 시집 <슬픈도 깊어지면 힘이 세다> 중에서
오래된 정원은 우주의 정원이고 내 안의 정원이고 어머니의 품이다. 그 정원에는 우주나무, 즉 어머니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라일락이다. 문제는 그 정원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고, 그 집에는 어머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집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대신하는 라일락 나무가 있어, 몸살나 조퇴하고 불기 없는 찬방에 누운 내게 이마를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그 나무에 올라 어리광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를 이토록 아름답게 극복하는 예는 드물다. 이 시를 프로이드나 라깡을 들이대며 읽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무가 짚어주는 이마를 갖고 싶어라.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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