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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시인 / 전윤호 본문
사소한 시인
전태화와 장명화의 아들인
전윤호는 시를 쓴다
안현숙의 남편이고
전용걸과 전홍걸의 아버지인
전윤호는 시인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노무현이 자살한 시대
일본에서는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자유를 외칠 때
전윤호는 방구석에 앉아서
시를 쓴다
농부들은 밭을 갈고
매화나무는 꽃봉오리를 준비하는데
창밖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전윤호는 시를 쓴다
몇 번의 실연과
몇 번의 사직서
그리고 몇 번의 구급차와
몇 개의 빚더미들
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텅 비어 있던
성인들의 무덤과
어차피 공정할 수 없는
인간의 제도에 대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처럼
터무니없이 사소한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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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인 전윤호. 사소하고 비루먹은 시인이다. 비로소 인간이다. 씨발 시인이구나 전윤호는 외계인이구나. 시인의 가계가 이렇게 쓸쓸하고 사소하구나. 맨날 시만 쓰는 너는 귀신이구나. 터무니 없는 무당이구나. 밥을 먹고 똥을 싸고 밥벌이를 하고 죽을뚱 살뚱하는 사소함을 넘는 위대함은 없다, 아 졌다. 당신은 위대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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