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와우 / 한승태 본문
와우(蝸牛)
일 만년의 시간을 끌고 나와
충분히 미련할 줄 알고
대지의 연한 입술만 더듬는 그를
때를 기다려 밭가는 맨발의 황소
라고 부르자, 농경민족의 기억 속에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햇살가시나무처럼
바람의 워낭소리 낭자하고 온통
무료의 양식으로만 자라는 이파리 뒤에 숨어
구름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풀숲에 이랑을 내고
웅덩이를 파고
불알 덜렁대며 이슬을 갈아엎는
청동기 속의 따비가 되어
논길로 걸어가는
머리에 이고 가는
고봉처럼 꾹꾹 눌린 봄볕
한 숟가락 푹 떠 혀끝으로 밀어 넣으면
목숨 한끝이 꿀럭꿀럭이다가
바늘다발로 올라오던 어둔 생목도
한 가득 내려가서
대지의 몸을 환하게 열어젖히고
꿈틀꿈틀하는 것이다
계간 <시와 소금> 201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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