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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 / 한승태 본문
가물
일렁이는 물결에 여보, 라고 기대 본 적이 있다
당신 물살과 눕고 싶었으나 연줄마냥 팽팽했다
당신의 등에 가 닿으면 썰물은 저만치 달아났다
당신에게 등 돌려 누우면 밀물은 눈동자에 차기 시작했다
빗방울 흐르고 눈물방울 흘러 땀방울에 가뭇없고
쌓여가는 부채는 뱃살로 늘어가고 말들은 말라갔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물이랑 높은 파고가 몰아쳤다
궁싯거려도 달의 창백(蒼白)에 조금씩 허물어지기도 했다
손을 잡은 기억이 시계 속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검버섯은 눈가에서 자라나 온몸으로 가물거렸다
입었던 옷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사이
먼 곳에서 오는 별빛처럼 눈 밑에 차곡차곡 쌓여서
잠자리에 같이 포개져도 가 닿는 해안의 체위는 달랐다
빠져나간 온기의 말들이며 말하지 않아도 그 깊던 가물이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너의 다정을 물밀 듯 다 흘려보내고
썰물 빠지는 저물녘 내가 지나온 길에 등을 대어본다
월간 <현대문학> 2017.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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