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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 / 한승태

바람분교장 2018. 10. 15. 16:23

가물

    

 

일렁이는 물결에 여보, 라고 기대 본 적이 있다

당신 물살과 눕고 싶었으나 연줄마냥 팽팽했다

 

당신의 등에 가 닿으면 썰물은 저만치 달아났다

당신에게 등 돌려 누우면 밀물은 눈동자에 차기 시작했다

 

빗방울 흐르고 눈물방울 흘러 땀방울에 가뭇없고

쌓여가는 부채는 뱃살로 늘어가고 말들은 말라갔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물이랑 높은 파고가 몰아쳤다

궁싯거려도 달의 창백(蒼白)에 조금씩 허물어지기도 했다

 

손을 잡은 기억이 시계 속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검버섯은 눈가에서 자라나 온몸으로 가물거렸다

 

입었던 옷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사이

먼 곳에서 오는 별빛처럼 눈 밑에 차곡차곡 쌓여서

 

잠자리에 같이 포개져도 가 닿는 해안의 체위는 달랐다

빠져나간 온기의 말들이며 말하지 않아도 그 깊던 가물이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너의 다정을 물밀 듯 다 흘려보내고

썰물 빠지는 저물녘 내가 지나온 길에 등을 대어본다



월간 <현대문학> 2017.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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