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초록 / 한승태 본문
초록
풀꽃처럼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아라 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밝고 거기서 출발하리라
대지만 편애하여 어깨를 좁히진 않으리
물오르는 겨울나무가 펼치는 나무초리 끝
이제 막 바람이 간질이고 가는 새싹 그 첫 울음부터
대지를 움켜쥘수록 더 높이 가지를 뻗어 올리는
몸 안에 목을 세우는 가시와 이파리의 전투에서
태양의 목덜미를 물고 뜯는 집요함을 배워라 나는
고독을 구부릴 줄 아는 성층권의 나이
거북목과 저린 두 팔을 펴드는 사무원처럼
병든 길을 따라 나무의 마른 안쪽 울울(鬱鬱)에서
역마살에 온몸을 맡기는 날개를 펴라 나는
대지에 발을 디뎌야만 사는 몸뚱이의 천역에서
거친 바람 채찍에 높이뛰기를 하라 나는
너머를 사랑하는 구름과 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바람
대지의 저주에서 벗어나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뇌우와 폭우에도 끄떡없던 나무도 나도
구만리장천을 장엄하게 탕탕(蕩蕩) 울릴 기세였지만
한 쪽만 살짝 기울어도 바로 서지 못했다
한 쪽만 쳐도 양쪽이 다 울리는 북이다
계간 <시작> 201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