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잠에 들다 / 한승태 본문
잠에 들다
세상 소리 다 듣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촛불
유리창마다 그 여리고 긴 손가락들
걱정이란 걱정 몸에 다 들이고 오히려 중심은 텅 비어
아스팔트에서 피뢰침 너머 구름까지
소리를 울려 하늘을 둥글게 감싸 안는 범종
오랜 예언 끝에 서서히 움직이는 당신
물방울 오시네
호령하듯 산 너머 오시는 너울 파도
베란다 장독대 뚜껑일랑 서둘러 덮고빨래도 걷고
갈매기 날개로 사선으로 내려앉으려다
살구나무와 후박나무 이파리가 희번득 놀라고
아파트 벽 앞에 몸을 일으켜 닫힌 창문 두드리네
동棟과 동 사이 느티나무 철없이손을 흔들고
바람이 쓰르라미를 먹고 쓰르라미는 휘파람새를 먹고
살구는 걱정을 떨구고 고춧대를 쓰러트리고
물방울 오시네
내 귀는 구름으로 부풀다 가물가물하고
악몽을 밟고 안으로 쓱 들어오시는 고래의 보살행
전생에서 현생까지 물방울 깊어지는 소리
손가락 끝에서 천만 촛불 타오르네
계간 <시인수첩> 201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