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아주 오랜 산책/한승태 본문
아주 오랜 산책
한 승 태
몇 차례의 건널목을 건너고
또 몇 번의 교차로에서 망설였던가
강 저쪽은 동굴처럼 검은 아스팔트 바퀴들만 바쁘고
모든 인연의 다리가 끊긴 사내는
이쪽 강변의 무성한 풀포기와 앉는다 가끔은
강 건너오는 경적에 얇은 귀가 쓰러지고
허한 시선을 바람의 혀가 핥기도 한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실핏줄이 풀어지고
넓은 강가에 와 비로소 잔잔해지는 물결 위로
날개 밑 바람을 감아 안으며
전쟁이 용서한 유적, 교각만 남은 옛 다리로
철새들은 내려앉는다
모든 저녁의 길들은 歸家를 재촉하지만
느릿느릿 꿈꾸듯 건너오는 안개만이
저 상처의 교각 위에 다리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