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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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깔나무 숨 속
한승태
오줌이 마려웠다
451번 지방도와 31번 국도가 만나는
아홉사리재 인적 없는 국유임도를 따라
무작정 들어선 나무들의 숨 속
키 작은 떡갈나무와 개암나무 길섶으로
드문드문 팔은 움츠렸지만
발끝은 부드럽고 아스라이 소로는 이어졌다
수직의 나무 끝에 소곤거리는
수북이 쌓여 햇살이 되고 노래가 되고
둥글게 풍화되는 숲
문득 길을 감추는 이깔나무 숨 속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떡갈나무와 개암나무에 늘어진
탱탱한 오줌보와 구부러진 시계 초침을 따라
저 멀리 내가 걸어온 길에는
주저앉은 바퀴와 급한 용무가 있고
아내와 딸이 차례차례 있는 것이다
현대시 200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