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뱀을 기다리며 본문
뱀을 기다리며
-청평사 공주塔에 기대어
한승태
이렇게 낙담하는 마음이 많으니
한 때 사랑도 참 많았나보다
이름을 淸平이라 하고 석탑을 쌓은들
호랑이와 이리가 주인자리를 내놓을 수야 있나
두려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끝내 사랑한다고 폭포는 떨어지는데
공주는 아직 저문 능선에 귀 기울이고
그대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난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자고 이 몰골로 사랑을 알았을까
이끼 핀 공주塔은
환희嶺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탑신의 모서리마다 새겨진,
한때 옥개석 위로 기어 올라간 영혼은
몇 겁의 석양으로 붉어지고
내 안의 千塔은 어찌 허물 것인가
山寺 길목의 높은 곳에 이르러
저 혼자
바람만 공양하고 돌아나간다
현대문학2004년 4월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