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새들은 공중에서 / 정혜영 본문
새들은 공중에서
정혜영
사막을 건너 멕시코 장벽을 넘으려던 여자의 심장이 멈췄다
맨발은 더 이상 모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선인장이 가시를 견디고 있다
독수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견디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국경수비대가 흩어진 소지품을 챙긴다 발을 떠난 신발이
국경을 바라보며 저만치 엎어져 있다 인적이 드문 밀입국로, 성공하기 제일
어려운 루트, 사막과 더위와 가난과 희망, 어느 것이 더 무모했을까
국경수비대는 흐트러진 몸을 담요로 덮어주고 옷깃을 여민다
경고문이 적힌 소용없는 팻말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말들, 그녀의 마
지막 길에 거수경례를 한다
국경을 넘으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없는 트렁크 속의 마리
화나, 없는 고가의 물건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지은 죄가 없어도
액자 속에서 얼어버린 파도 소리가 들린다 심장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새들, 중앙선을 넘고 국경을 넘어 날아간다 공중에서 죽음을 맞는다
국경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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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경의 풍경이다. 죄 없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경계의 죄인이 된다. 죽어서도 국경은 침범 못할 선일까! 심장의 파도가 넘나드는 저승과 이승의 국경을 넘는다. 국경이 보이다가 안 보인다. 넘나드는 파도 너머의 일이다. 심장박동이 요동치던 국경은 이미 사라졌지만 어디에서 안식을 얻을까. 먹고 사는 죄다. 먹고 사는 게 신성하다고 자본주의와 종교는 얘기하지만 자본주의의 국경은 열리지 않는다. 죽어서도 열리지 않는다. 종교는 안식의 문을 열어줄까? 아마도 저들은 죽어서 제왕나비가 되어 북미를 날아갔다 다시 멕시코의 미초아칸주의 산정으로 돌아오리라. 죽은 자들의 날에 말이다. 산 자에게만 먹고사는 일이 귀하다. (한승태)
예전 나도 멕시코의 국경 이야기를 다큐로 보면서 <제왕나비>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는 제왕나비에서 노랑나비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쓴 시가 있다.
노랑나비
나비에게 소원을 빌면
말하지 못하는 나비는 비밀을 간직한 채
하늘로 간다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탔던 사람들은
맹골수도 어두운 바다 속에서
이국만리 독립 투쟁의 장정에서
힘없는 국가에 태어나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혹은 먼저 떠난 부모와 형제자매를 찾아
이승의 국경을 넘는다
억눌리고 발버둥 치다 죽은 이들의 밤이다
해마다 봄이 되어도
음습한 추위가 뼈마디마다 촛불을 켜겠다
나비가 돌아오듯 봄꽃들이 해마다 기억할 것이다
멀게는 동남아에서 중국에서 이름 모를 섬에서
가깝게는 맹골수도에서 집집마다 문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사막을 지나
生의 국경을 넘어
태양의 길을 따라 봄꽃으로 봄비로
삶에 죽도록 목마른 이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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