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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 공광규 본문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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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은 196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등이 있다.
모든 아버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을 바쳐 정신없이 산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가족은 가족대로 아버지와 멀어진다. 가족을 위해 산 아버지가 가족과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초라해지는 것이 아버지다. 가족이 그런 아버지의 삶을 알아준다면 고마운 일이 되었다. 퇴직한 아버지, 명퇴나 직장에서 도태된 아버지가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일로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하다 보니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오히려 가족과 멀어진 빈병이다. 나도 그와 다르지 않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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