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날씨 하나를 샀다 / 이서화 본문
오줌 누는 달
절에서 일박은 고요해 숨어 있던 소리를 쉽게 들킨다
늦은 밤 해우소 가는 길에 본 길고도 긴 오줌 누는 소리, 몇 개의 돌확을 지나 내려오는 쪼르륵쪼르륵 흐르던 소리 내려올수록 고요해진다
한밤 참았던 요의는 어디로 흘러갔는지 고요한 돌확에 여러 개의 달이 들어 있다 어는 별에 가면 달은 몇 개의 밤을 흘러 다니고 바람이 불자 벚꽃 잎 우주선 착륙하듯 돌확에 내려앉는다
달밤의 절집 마당가 누군가 달의 뒤로 돌아가서 오줌을 눈다면 엉덩이 뒤만 보이듯 달의 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아래쪽 웅덩이에서 떠간 찻물이 졸졸 끓고 졸아들고 있다
힐끗, 돌아앉아 달이 오줌을 눈다
사람이 숨은 사람
숨어 있는 사람이 있다
잠깐 숨었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길게 나보다 더 나 같이 숨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간혹 다른 사람의 말투와 행동이 보이기도 한다
제 몸을 덮고도 조금 더 남은 옷을 고집하거나 자꾸 자신의 뒤를 넓히려는 사람은 그 안에
다른 사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건 누구나 한 번쯤 꼭 겪는 일이어서 맑은 날 그는 평소보다 더 넓고 큰 그림자를 갖고 있거나 옛날 우리 언니처럼 마음을 품었던 담장 밖을 귀담아듣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속으로 숨는다
자신에게 거짓말로 숨는 사람, 눈치 속에 숨는 사람
그러다 가끔은 불쑥,
사람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그땐 사람의 말로 난무하는
만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서화 시집 < 날씨 하나를 샀다>, 여우난골 중에서
사람에게 사람이 숨는다. 충격이었다. 그것은 오랜동안 사람에게 시달려온 자만이 갖게 되는 통찰 같다. 어떤 때는 자신이 한 일 같지 않은 일도 있다. 그래서 부정하기도 하고 기억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방어기제라 할 터인데, 왜곡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하는, 흉내내는 그런 일은 사람 사는 세상에 흔하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족이지만 정치판 한정하는 건 아니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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