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전문가라는 직업 본문
전문가라는 직업
아부지 어무이는 맨발로 디딘 흙에서 바람을 주물렀고 별을 북돋웠다 그렇게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다 피륙을 만들고 베잠방이도 지었다 신발을 만들고, 골짜기마다 떨어진 이웃과 더불어 집도 지었다 오줌이 얼어붙는 겨울, 새끼를 꼬며 메밀국수 추렴도 하고 철마다 두레의 하늘에 거칠 게 없는 주인이었다
모르는 이의 수고가 없다면 하루도 살기 힘든 나는 끊임없이 무엇 하나 온전치 못한 나사와 볼트를 만들어 왔다 조립하여 판매하는 회사에서, 판매한 노동으로 집을 빌리고 옷을 샀다 고길 사다 냉장고에 잔뜩 쌓았다 쌀알이 어떻게 여물고 어떻게 내게 오는지 모르고 이웃과 칸막이를 했다 아무 불편이 없이, 미세먼지의 하늘 아래 불구를 꿈꾸었다
시집<고독한 자의 공동체> 중에서
시작노트
전문가로 살아간다는 거
나의 부모 세대는 농사지어 자급자족했고, 천도 만들었고 옷도 만들어 입었다. 심지어 신발도 만들어 신었고, 집도 스스로 지었다. 대략 생각해보면 의식주를 해결했다. 만능인이었고 유니버설했다. 그래서 가족의 힘은 세계의 힘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웃과 강한 유대를 형성하며 살았다.
내가 사는 세대를 돌아보면 지금 가족은 무엇 하나 혼자 생산하지 못한다. 각자 부품들만 만들고 살아간다. 조립은 회사가 하고 판매하고 우리는 소비자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이웃이 없다면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웃과는 더 멀어졌다. 벽 하나로 이웃하여 살아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더 분자화되고 있다. 아니 원하고 있는 거 같다. 무엇하나 온전하게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전문가라는 직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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