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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등이 열린 사람/안주철

바람분교장 2021. 3. 9. 09:24

등이 열린 사람

 

 

 

 

어느 밤이었다

 

경사가 쌓인 인도를 올라가는

사람의 등을 보고 있었다

 

어느 밤이었다

 

등이 열린 사람을 보고 말았다

 

이 세상의 구멍이 거기에 있었고

나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 등으로

어둠이 들어가고 있었다

 

셀 수 없었지만

어둠이 그 등을 가득 채우자

등에서 더 짙은 어둠이

쏟아지고 있었다

 

등이 열린 사람을 보았다

 

등이 열린 사람이 비탈진 길을

오르고 있었다

 

 

안주철 시집 <느낌은 멈추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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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열린 사람은 어둠 속의 사람이고 어둠을 불러들이고 어둠을 쏟아내는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는 불빛조차 허락되지 않기에 그는 실루엣으로만 존재한다. 그는 구분되지 않는다. 너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다. 실루엣은 거기서 나와 어둠과 교감한다. 그가 어둠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구멍이 거기 있고, 불빛 속의 사람들은 그 구멍을 외면하겠지만 그래서 그 구멍은 점점 넓어질 것이고 온통 세상은 어둠이 지배할지 모를 일이다. 시집 다음 페이지에 배치된 <불을 끄고 누워서>가 연작처럼 읽힌다. ‘어둠이 모여서 어둠이 되려면/ 좀 더 어둠이 쌓여야 하지만’ 그에게 어둠은 이미 충분하다. 그가 ‘했던 생각들 모두 그를 이루고 있는 조각들이’고 ‘어디에서 그칠지 모르는 생에 대한 두려움'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모시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을 본다. ‘어둠 속이 넓은지 어둠 밖이 넓은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어둠으로 열린 세계를 우리는 보는 것이다. 한승태

 


순서

 

 

 

당신이 떠나고 눈물이 늘었다

당신이 떠나고 눈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그리고 이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이 떠나자

나는 당신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모든 몸부림,

사랑 아닐까?

 

더 꼭 안기기 위해서 애쓴 흔적,

그게 고통일지라도

 

당신이 떠나고 눈물이 많이 즐었다

강가에 나가 물결을 하나하나 세다보면

밤이 되지만

 

이제 눈물이 나를 앞질러 이번 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나는 몇 번째 사내인지 궁금할 것이다

 

몇 번째 텅빈 사내인지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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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나고 나는 눈물이 늘은 것인지 , 눈물이 늘어서 당신이 떠난 것인지 나는  그 순서를 모르지만 전부였던 당신이 떠나고 나서 나는 텅비었다. 당신에 맞춰 살았기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그 빈자리만큼이 당신이다. 내게 남은 것은 당신을 더 사랑하려던 흔적만 남아 당신의 부재를 증명한다.  당신이 떠나고 늘어난 눈물이 나의 생을 앞질러 간다. 내가 먼저인지 당신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난 자국만 남은 사람이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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